주간동아 1021

..

스포츠

주인 바뀐 삼성 라이온즈의 미래

제일기획에서 자생력 갖춘 스포츠기업으로 변신 중, 다른 팀에게도 영향 미칠 듯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lkh@naver.com

    입력2016-01-12 16:31:4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삼성 라이온즈의 푸른색 유니폼은 프로야구가 태어난 1982년부터 지금까지 다른 팀 선수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삼성의 1등주의는 프로야구에도 그대로 투영됐다. 파격적인 연봉과 각종 보너스, 최고의 훈련 시설과 복지후생 등 삼성은 절대 떠나고 싶지 않은 팀이거나 꼭 한 번 뛰어보고 싶은 구단이었다. 다른 팀에서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한 후 삼성으로 이적한 선수 가운데 깜짝 놀라는 이가 많았다. 현역시절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삼성으로 이적했던 김기태 KIA 타이거즈 감독은 “먹는 것부터 다르더라”고 회상했다. 한 현역 코치는 “삼성으로 이적한 후 ‘이렇게 보너스를 많이 받는데 왜 우승을 못하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삼성은 이미 1990년 선수단 전용 훈련장과 숙소, 정규 야구장까지 갖춘 종합시설인 경산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를 개장했다. 상당수 다른 팀이 야구장 인근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웨이트장을 만들어 이용하던 시절이었다. 수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다퉜던 KIA가 2012년에야 전남 함평군에 전용훈련장을 만든 것과 비교하면 22년이나 앞섰다.


    삼성은 지금도 해외 스프링캠프 훈련 시설에 사실상 권리 지분을 가진 유일한 구단이다. 삼성은 일본 오키나와에서도 가장 위치가 좋은 온나손에 훈련장을 갖고 있다. 삼성은 온나손 캠프 실내 훈련 시설 건립에 직접 투자해 반영구적인 우선사용권을 확보했다.
    삼성은 또한 1985년 당시 일본 프로야구 팀들도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던 미국 메이저리그 팀과 스프링캠프 합동훈련이라는 엄청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시 김영덕 감독이 이끈 선수단은 LA 다저스의 플로리다 베로비치 스프링캠프를 찾았고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다. 다른 팀들은 일본, 중국 등지로 해외 전지훈련을 가는 것 자체가 버겁던 시절이었다. 85년 삼성에 전수된 LA 다저스의 수비 포메이션은 류중일 현 감독이 수비코치 시절 완벽하게 팀에 적용돼 지금까지도 삼성의 큰 강점으로 위력을 떨치고 있다.



    FA 시장에서 언제나 큰손

    삼성은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언제나 큰손이었고 외국인 선수 시장에서도 가장 큰 고객이었다. 필요한 선수는 수십억 원을 투자해 꼭 잡았고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 현역 25인 로스터 등 다른 구단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의 용병을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파격적인 액수로 데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2015년 겨울 모든 것이 달라졌다. 삼성그룹은 12월 4일 김동환 삼성웰스토리 대표이사를 삼성 라이온즈 대표이사로 임명했다. 5년 동안 한국시리즈 4차례 우승을 함께 한 김인 대표는 삼성SDS 고문으로 위촉됐다.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특별한 점이 있었다. 바로 대표이사의 직급이다. 김동환 대표이사는 부사장이다.
    삼성그룹 전체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비중은 크지 않다. 선수단을 제외하면 정규직 직원이 3명 안팎으로, 그룹 전체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계열사다. 그러나 대외적 이미지를 감안해 그동안 야구단 대표이사는 사장급이 맡아왔다. 김응용 전 대표도 사장이었고, 김인 전 대표는 삼성 라이온즈에 취임하기 전 삼성SDS 대표이사 사장이었다. 각 프로야구단 가운데 직급상 전무이사 또는 부사장급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구단이 현재도 다수다. 야구계에서 기아자동차 국내법인 사장이 대표이사를 겸직하는 KIA와 함께 삼성 야구단 대표이사의 위상이 매우 높았던 이유다.
    김동환 대표이사 취임은 제일기획의 삼성 라이온즈 인수를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제일기획은 삼성 라이온즈 주식 12만9000주를 6억7596만 원에 취득, 지분 비율 67.5%로 최대주주가 됐다. 현재 제일기획 최고경영자(CEO)는 임대기 사장. 그러나 스포츠사업 부문은 그룹 오너 일가인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이 맡고 있다. 김 사장은 그룹 총수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위다. 이미 삼성그룹은 그동안 개별적으로 운영하던 각 프로스포츠 구단을 제일기획으로 이관해왔고, 마지막으로 가장 규모가 큰 삼성 라이온즈를 포함시켜 일괄 운영체계를 완성했다. 이에 따라 김재열 사장이 스포츠단을 총괄하고, 김동환 부사장이 삼성 라이온즈 대표이사로 CEO를 맡는 시스템을 갖췄다.
    삼성 라이온즈 측은 “제일기획이 구단 운영금을 전액 지원하는 시스템은 아니다. 자회사로 편입됐지만 기존처럼 그룹 각 계열사가 야구단에 광고 마케팅을 목적으로 지원을 계속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대주주가 된 제일기획의 최종 목표는 마케팅 노하우를 스포츠산업에 접목해 그룹의 사회공헌과 홍보 채널 중 하나인 야구단의 기업화인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프로야구단 스스로 자생력을 갖춰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 왕조는 끝났다”

    삼성은 프로스포츠 구단의 체계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팬 서비스와 함께 수익 창출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제일기획은 “축구단 인수 후 K리그 유료 관중 비율 1위 달성, 유소년 클럽 등 선수 육성 시스템 강화, 통합 패키지 스폰서십과 브랜드데이 도입 등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팬들에게 좀 더 만족스러운 볼거리와 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각 구단에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솔루션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FA 4년 몸값이 100억 원에 육박하는 프로야구는 삼성의 선택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미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삼성 주장 박석민은 4년 96억 원에 NC 다이노스로 떠났다. 공격력 약화를 막기 위해 외국인 타자 야마이코 나바로와 재계약이 꼭 필요했지만 거액을 요구하자 망설임 없이 결별했다. 마운드는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임창용을 방출한 데다, 또 다른 핵심 전력 윤성환과 안지만의 복귀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여서 삼성이 외국인 투수 영입에서만큼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과감한 투자 기조를 유지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지만 그 역시 아니었다. 투수 앨런 웹스터와는 총액 85만 달러(약 10억 원), 콜린 벨레스터와는 총액 50만 달러(약 5억9000만 원)에 계약했다. 다른 구단들이 100만 달러 안팎의 특급 외국인 선수를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이뤄진 조용하고 신속한 결정이었다.
    프로야구업계는 이미 삼성을 내년 우승후보군에서 제외하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삼성 왕조는 끝났다”는 말도 나온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넥센 히어로즈를 제외한 모든 팀은 모그룹의 기업 이미지 홍보 및 사회공헌을 주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 모기업이 경영난을 겪는 경우를 빼고는 단 한 번도 자발적 매각이 없었다. 이처럼 각 기업의 프로야구 참여에는 오너의 야구사랑 외에도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가장 맨 앞에서 기존 프로야구 시스템을 이끌던 삼성이 가장 먼저 큰 변신을 선택했다. 한 구단 경영진은 “같은 재계 순위 1〜10위권이라 해도 삼성과 현대자동차의 비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선수 몸값이 폭등하는 가운데 삼성이 전혀 다른 스포츠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어떻게든 다른 팀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