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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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계량할 수 없는 원초적 욕망과 힘

방백 ‘너의 손’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6-01-12 15: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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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이 끝날 무렵 몸이 익숙한, 하지만 흔하진 않은 느낌에 휩싸였다. 2002년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극장에서 보고 나올 때 그랬고,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논두렁 롱테이크를 봤을 때도 그랬다. 압도적이고 강력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아 결국 온 힘이 쭉 빠지는 바로 그 느낌 말이다. 영화가 아닌 공연을 보고 이렇게 압도된 적이 있었던가. 잘 모르겠다. 1월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열린 방백의 앨범 ‘너의 손’(사진) 발매 기념 공연은 그런 경험이었다.
    방백의 ‘너의 손’은 백현진과 방준석이 함께 만든 첫 앨범이다. 둘이 같이 앨범을 낸 건 자연스러운 흐름의 결과다. 거의 20년간 둘은 함께 노래하고 연주해왔다. 방준석은 어어부 프로젝트의 세션 기타였고, 백현진 솔로의 세션이기도 했다. 둘은 어떤 이름이든 늘 함께였다. 그러니 방백의 앨범 소식을 들었을 때 백현진 앨범의 연장선상에 있으려니 생각했던 것도 당연하다.
    틀렸다. 예측이 틀렸다. 완벽하게 틀렸다. 백현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을 통해 ‘한강’을 공개했을 때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깊고 깊은 산중에서 홀로 무공을 수련하던 은둔거사가 속세로 나온 듯했다. 앨범을 미리 받아 들었다. 세상에, 이게 말이 되나. 농약을 들이마시는 사내를 노래하던 그가, 막창 2인분에 맥주 열세 병을 마시고 섹스하는 밤을 노래하던 그가 자신의 노래가 힘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사랑 노래가 울려 퍼지는 밤을 외치고 있다. 나는 백현진의 음악을 종종 홍상수 영화에 비유하곤 했다. 일상의 어떤 순간들을 담아내지만 너무 선명하고 건조해 오히려 낯설게 하는 능력이 둘 모두에게 있다(실제로 그는 홍상수의 영화 ‘북촌방향’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너의 손’은 백현진의 기존 세계에서 건조함을 덜어내고 따뜻함을 더한 음악이다. 통속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통속은 지금의 그것과는 다르다. 드라마 ‘서울의 달’ ‘유나의 거리’ 등을 집필한 김운경 작가의 통속에 가깝다. 살이 섞이는 냄새가 있고 이를 둘러싼 풍경이 있다. 이 냄새와 풍경에 활기를 더하는 건 프로듀서 및 기타를 맡은 방준석의 몫이다. ‘사도’ ‘베테랑’ 등의 영화음악 감독으로도 잔뼈가 굵은 그는 방백의 앨범을 위해 많은 음악가를 불러들였다. 서영도(베이스), 신석철(드럼), 윤석철(건반), 림지훈(오르간), 김오키(색소폰), 손성제(클라리넷), 임가진(바이올린) 등. 방백과 함께 한 10여 명의 음악가는 모두 각 분야를 대표하는 연주자이지만 뛰어난 창작자이기도 하다.
    그들은 백현진과 방준석이 깔아놓은 운동장에서 품세를 선보이고 겨루기를 하며 내공을 뽐낸다. 무협으로 치자면 각 문파를 대표하는 사범들이 모여 펼치는 무도회요, 스포츠로 치자면 팀워크까지 겸비한 갈락티코 시절의 레알 마드리드다. 단언컨대 이 정도의 음악인들이 모여 이 정도의 호흡을 과시하는 앨범은 적어도 21세기 들어서는 ‘너의 손’이 처음이다. 이 팀의 최전방 공격수인 백현진이 그동안 쌓아온 신뢰와 영화음악 감독으로서 쌓아온 방준석의 능력이 가능케 한 결과일 것이다.
    앨범에 참여한 음악가 대부분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총 12명 대규모 편성. 하지만 무대의 합은 12명이라는 숫자 이상이었다. 디스토션 사운드, 파워 드러밍 따위가 없이도 그들이 만들어내는 ‘쎈’ 기운은 스마트폰 한 번 들여다볼 틈 없는 집중력을 끌어냈고 종종 숨을 턱 막히게 했다. 그동안 봉인해왔던 마력을 해제시킨 듯한 백현진의 보컬과 퍼포먼스는 콘서트와 연극, 마임의 구분을 무색하게 했다. 연주자들은 좁은 스튜디오에 갇힐 수 없는 음파의 카오스적 코스모스를 울렸다. 록 공연장에서조차 이런 압도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이론으로 계량할 수 없는 원초적 욕망과 힘의 결과였을까. 2016년 음악계의 첫 이슈를 나는 방백의 첫 앨범과 공연으로 기억해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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