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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밖의 과학

생명이란 무엇인가

삶과 죽음, 그 경계에 대하여

생명이란 무엇인가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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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그 경계선은 얼마나 뚜렷합니까. 갈색 곱슬머리의 아일랜드 과학자가 숨죽인 강연장에서 첫 마디를 열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이라니. 노년의 철학자가 꺼낼 법한 이야기가 푸른 눈빛의 젊은 과학자에게서 나오자 청중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는 편안하게 말을 이었다. 

캐나다 북부로 가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송장개구리(학명 Rana sylvatica)를 만날 수 있다. 캐나다 송장개구리는 아주 특별한 재주가 있다. 모두 알고 있듯이, 개구리는 변온동물이어서 주위 온도에 따라 자신의 체온 역시 변한다. 문제는 캐나다 송장개구리는 적당히 낮은 온도가 아니라 매우 추운 환경에서 산다는 것이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송장개구리는 얼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다리가 얼고, 그다음은 머리와 가슴이 언다. 그리고 결국 심장까지 얼어버린다.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

캐나다 송장개구리. [shutterstock]

캐나다 송장개구리. [shutterstock]

여기서 언다는 것은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심장박동이 없고, 맥박도 없다. 몇 주간 캐나다 송장개구리는 우리 기준으로 죽은 상태로 지내는 것이다. 하지만 봄이 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개구리의 심장은 천천히 다시 움직이고, 날씬한 다리로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마치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과 비슷한데 말이다. 

인간의 경우 몸속 세포가 얼기 시작하면 수분이 세포에서 빠져나가 탈수 상태가 된다. 세포 주변이 얼고 더는 수분이 남아 있지 않게 되면 세포는 부서지고 죽게 되는 것이다. 반면 송장개구리는 세포가 얼기 시작하면 간에 저장돼 있던 녹말이 포도당으로 분해되고, 이 포도당이 혈관을 타고 심장을 포함해 주요 장기 및 세포 속 수분과 결합해 마치 설탕물처럼 만들어준다. 설탕물은 물보다 어는점이 낮다. 그래서 세포가 완전히 얼지 않는 것이다. 천연 내한제를 몸속에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추위를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 캐나다 송장개구리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얼어 죽는 대신 얼어 사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의 근원, 세포

퍼거스 매콜리프 교수. [TEDx Talks 유튜브]

퍼거스 매콜리프 교수. [TEDx Talks 유튜브]

훌륭한 발표를 마친 그의 이름은 퍼거스 매콜리프(Fergus McAuliffe). 아일랜드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코크의 환경과학자인 그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냉동장기 연구를 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음으로 가는 시간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수많은 과학자도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만큼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생명이라는 것, 그 정체는 무엇일까. 



생명이 있는 것을 우리는 생물이라 부르며, 그렇지 않은 것은 무생물로 분류한다. 무생물은 정리되지 않은 방 안과도 같다. 언제부터 쌓였는지 모를 잡동사니와 각종 쓰레기가 무분별하게 어질러져 있다. 생물은 여기서 약간의 규칙과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정리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구상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은 ‘세포’라는 아주 작은 단백질 기반의 부품으로 이뤄져 있다. 세포는 테두리에 벽을 갖고 있어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스스로 반응하고 성장하면서 진화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세포야말로 생명의 근원이자 시작이 아닐까. 

재미있는 사실은 세포가 생명의 가장 보편적 증거라 해도, 세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전혀 살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세포는 살아 있다. 허나 세포를 구성하는 각 부분에서 수백만 종류의 화학반응이 오케스트라처럼 복잡하게 일어나긴 해도 정작 세포의 어느 부분도 살아 있지는 않다. 좀 더 보편적으로 들어가면 생물은 죽어 있는 모든 것으로 이뤄진 세포의 동력기관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무생물로 이뤄진 부품이 결합해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되거나 꽤 빠른 자동차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는다. 다행히 여기서 죽음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절망적이지 않다. 이미 생명체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확실한 죽음에 이른 상태며, 그저 원래 상태로 잘게 분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분리되는 것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최종 목표는 다시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내 영원한 죽음을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체 가운데 운 좋게 가장 우수한 설계도에 따라 만들어진 생명체만 살아남게 되고, 그 설계도는 다양하게 변형돼 다음 개체에 다시 옮겨진다. 우리는 이 유전자 정보가 포함된 설계도를 DNA라 부르며, 살아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은 단순히 정보를 옮기는 과정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계속 옮겨지는 DNA야말로 생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설계도는 생명체에게 반드시 필요하며, 생존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DNA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과연 생명이라는 것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어느 시점부터를 생명체로 볼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살아 있는 존재만 뭔가 특별히 신비로운 재료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살아 있지 않은 것을 이루고 있는 똑같은 물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살아 있거나 혹은 죽어 있다는 착각

애벌레가 나비로 환골탈태할 때 남겨진 고치는 무생물이지만 변태과정에서 생명의 일부이기도 했다. [shutterstock]

애벌레가 나비로 환골탈태할 때 남겨진 고치는 무생물이지만 변태과정에서 생명의 일부이기도 했다. [shutterstock]

생명의 근원이나 증거를 찾는 것은 너무 어려우니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만약 이 우주의 모든 것이 전부 같은 물질로 구성돼 있다면 생명체라는 것이 존재할까. 과연 생명이라는 것을 별도로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모두 죽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전부 살아 있는 것일까. 우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한 번도 살아 있은 적이 없었기에 결코 죽을 수 없는 불로불사(不老不死)라고 볼 수도 있을까.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럼 정의란 무엇이며, 행복이란 무엇인가. 마치 무엇인지 알려주려고 한 것처럼 제목부터 직설적으로 묻는 책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결론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팔렸지만, 결코 정의라는 것은 책 한 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스라엘 최고 랍비로 불리는 하임 샤피라 역시 행복에 대해 수학공식처럼 알려주는 책을 쓴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책을 통해 이게 무엇인지 쉽게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터득할 수 있을 뿐이다. 

생명도 마찬가지다. 이 짧은 글로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삶과 죽음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내릴 수 없다. 그저 우리는 생명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계속 살아야 한다. 생명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며.


궤도_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한 후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을 진행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주간동아 2019.08.30 1204호 (p64~66)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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