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02

2019.08.16

명욱의 술기로운 생활

안동소주는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다!

풍부한 맛과 깔끔한 맛, 원하는 대로 선택

  • 주류 문화 칼럼니스트

    blog.naver.com/vegan_life

    입력2019-08-19 10: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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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하회마을 전경. [사진 제공·이용덕]

    안동 하회마을 전경. [사진 제공·이용덕]

    ‘처음처럼’이나 ‘참이슬’ 같은 대기업 술 말고, 한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지역 소주는? 전통소주인 안동소주일 것이다. 경북 안동에서 나는 소주가 안동소주로 불린 것은 일제강점기부터. 제품명을 기준으로 할 때 안동소주를 가장 오래된 소주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몽골이 소주 제조법 전수

    현재 생산되고 있는 다양한 안동소주. [사진 제공·팟캐스트 말술남녀]

    현재 생산되고 있는 다양한 안동소주. [사진 제공·팟캐스트 말술남녀]

    그런데 안동소주는 단일 제품이 아니다. 현재 안동소주를 생산하는 업체가 5곳 이상 된다. 제품마다 도수가 다르고 발효와 증류에서도 각기 다른 기법을 채택해 맛 역시 다양하다.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는 안동소주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안동소주가 유명한 이유부터 살펴본다. 우리에게 소주 기술을 전수해준 것은 고려 말의 침입 세력 몽골이다. 몽골이 일본 원정을 위해 안동에 병참기지를 세우면서 이 고장에서 소주가 제조되기 시작했다. 넓은 평야에서 쌀이 풍족하게 나는 안동은 군대가 머물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낙동강을 타고 남쪽으로 쉽게 이동할 수도 있었다. 

    둘째로 소주는 아무나 만들 수 없는 최고급 술이었다. 알코올 도수 45도의 안동소주 한 병을 만들려면 6도 전후의 막걸리 8병 이상이 필요하다. 따라서 쌀이 풍족하게 나는 고장의 특별한 가문에서만 소주를 빚을 수 있었다. 명문가가 많은 안동이야말로 소주의 명맥을 이을 자격이 됐다. 

    마지막으로 1920년 안동에 큰 주조공장이 세워졌다. 사명(社名)은 안동주조회사. 여기서 안동소주라는 이름을 단 최초의 술 ‘제비원 안동소주’가 출시됐다. 영주에서 안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거대한 제비원 석불의 이름을 딴 것으로, 이 석불은 당시 안동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이 제비원 안동소주는 곧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일본과 만주로 수출되기도 했다. 안동주조회사는 해방 이후 경북소주공업으로, 그리고 1974년에는 금복주에 인수되면서 주정(酒精)을 희석해 마시는 희석식 소주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민속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조옥화 여사가 경북 무형문화재로 선정된 이후 1990년대 들어 증류식 안동소주가 제대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


    1 민속주 안동소주가 소장한 옛 소줏고리. 2 민속주 안동소주에서 소주를 빚는 데 필요한 지에밥을 만드는 모습. 3 민속주 안동소주의 선물세트. [사진 제공·민속주 안동소주]

    1 민속주 안동소주가 소장한 옛 소줏고리. 2 민속주 안동소주에서 소주를 빚는 데 필요한 지에밥을 만드는 모습. 3 민속주 안동소주의 선물세트. [사진 제공·민속주 안동소주]

    현재 안동에서는 조옥화 명인(전통식품명인 제20호)이 만드는 ‘민속주 안동소주’, 박재서 명인(전통식품명인 제6호)이 만드는 ‘명인 안동소주’, ‘양반 안동소주’, ‘일품 안동소주’, 그리고 대구에서는 ‘금복주 안동소주’가 생산되고 있다. 이 중 전통 소주 애호가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제품이 민속주 안동소주와 명인 안동소주다. 같은 안동 쌀로 만든 이 두 소주에는 어떤 맛의 차이가 날까.

    소주마다 원액과 발효 기법 달라

    1 명인 안동소주가 사용하는 감압식 증류기. 2 명인 안동소주 양조장에 전시된 다양한 명인 안동소주 제품. 3 안동 전통음식과 함께 놓인 명인 안동소주. [사진 제공·명인 안동소주]

    1 명인 안동소주가 사용하는 감압식 증류기. 2 명인 안동소주 양조장에 전시된 다양한 명인 안동소주 제품. 3 안동 전통음식과 함께 놓인 명인 안동소주. [사진 제공·명인 안동소주]

    가장 큰 차이는 증류하는 원액에서 나타난다. 민속주 안동소주는 ‘술덧’이라는 탁주의 원액으로 증류하고, 명인 안동소주는 탁주를 걸러낸 맑은 술로 증류한다. 탁주를 증류하면 그 증류주는 탁주가 갖고 있던 다양한 향미가 함께 증발돼 복합적인 맛과 향을 지니게 된다. 반면 맑은 술을 증류하면 비교적 청아한 맛이 난다. 

    증류 기법도 다르다. 민속주 안동소주는 상압증류기를 사용해 상압 상태에서 그대로 증류한다. 알코올은 섭씨 78도 전후에서 기화하는데, 이처럼 고온에서 알코올이 기화하면서 다양한 향미가 함께 올라와 소주의 맛과 향을 형성한다. 한편, 명인 안동소주는 감압증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압을 낮춰 낮은 온도에서 증류하는 것이다. 섭씨 50도 이하에서 알코올을 증발시켜 향미의 일부분을 가져오지 못한다. 즉 다양하기보다 심플한 맛과 향을 갖게 된다. 정리하자면 민속주 안동소주는 복합적이고 진한 맛이 특징이라면, 명인 안동소주는 심플하면서도 간결한 맛과 향을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증류식 소주는 상당수가 명인 안동소주와 같은 감압증류 방식을 택해 간결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 ‘일품진로’ ‘화요’ ‘대장부’ 등이 그렇다. 상압증류기는 위스키, 중국 백주, 프랑스 코냑과 브랜디를 제조할 때 주로 쓰인다. 숙성 기간이 길어야 좋은 향미를 내기 때문에 그만큼 제조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특징이다.

    문어숙회와 특히 어울려

    많은 이가 ‘전통소주는 독하다’고 여긴다. ‘독주’로 불릴 정도다. 심지어 안동에서도 제사상에 안동소주를 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족 모두가 음복해야 하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마실 수 있는 탁주나 약주를 주로 올린다. 

    하지만 최근 나온 증류식 소주의 도수는 20도에서 50도까지 다양하다. 또 탄산수와 레몬, 토닉워터 등을 넣어 칵테일이나 온더록(On the Rocks)으로 얼마든지 마실 수 있다. 한때 안동소주는 한 병에 2만~3만 원 이상인 고급 제품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5000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의 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 명인 안동소주에서는 18년간 숙성시킨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술을 숙성시키면 맛이 부드러워지면서 풍미는 더해진다. 이제 안동소주도 위스키처럼 숙성 연도를 보고 고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발효 및 증류 기법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는 다양한 안동소주를 비교해가며 마시는 재미를 느껴보길 바란다. 

    안동에는 유명한 음식이 상당히 많다. 제사 아닌 날에 제삿밥을 먹는다는 의미의 헛제삿밥, 동해에서 잡힌 고등어를 소금으로 절여 안동으로까지 가져온 안동 간고등어, 1980년대 이후 안동에서 시작됐다는 안동찜닭, 그리고 예부터 안동에서 관혼상제를 비롯한 집안 대소사에 빼놓지 않고 내놨다는 문어숙회 등등. 이 중 안동 사람들이 문어를 즐기는 이유는 과거 시험과 관련 있다고 한다. 문어의 빨판은 과거 급제를, 문어의 먹물은 글쓰기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라고. 문어의 한자어도 ‘文魚’다. 

    필자는 안동 음식 가운데 문어숙회가 안동소주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안동소주의 진한 맛을 부드럽고 담백한 문어가 잘 잡아주기 때문이다. 또 문어가 가진 타우린과 단백질 성분이 숙취로 고생하는 간의 회복을 돕는다. 

    한편 민속주 안동소주와 명인 안동소주는 각각 박물관,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장소에서는 안동소주의 역사와 문화뿐 아니라, 예약할 경우 안동소주 맛도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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