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반이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원흉이라고?

돼지에 잔반 급여 중단 정부 방침에 사육농가 반발, 급식소는 난감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9-06-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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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원인으로 돼지에게 급여하는 잔반이 꼽히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관련법 개정에 나서자 전국음식물사료축산연합회가 6월 10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뉴시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원인으로 돼지에게 급여하는 잔반이 꼽히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관련법 개정에 나서자 전국음식물사료축산연합회가 6월 10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뉴시스]

    중국을 비롯해 유럽과 아프리카 등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중국에서 발생(133건)한 이후 올해 몽골 11건, 베트남 211건, 캄보디아 7건 등 주변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최근 3년간 46개국에서 발생했으며, 6월 1일에는 북한에서도 ASF 감염 사실이 확인됐다.

    한반도도 사정권, 정부 공동대응방안 발표

    ASF는 확산 속도가 빠르고 아직까지 백신이 나오지 않아 예방법이 없는 질병이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에 따르면 ASF는 최대 20일간 잠복기를 거쳐 고열, 피부 출혈 같은 증상을 일으키고, 급성형의 경우 아무런 증세도 보이지 않다 감염 1~4일 뒤 폐사하기도 한다. 다행히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지만 감염된 돼지의 치사율은 100%이다. 이 때문에 농가 피해와 돼지고기 가격 인상이 우려된다. 

    북한에서 ASF가 발생한 만큼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감염된 야생 멧돼지가 남쪽으로 내려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 이에 따라 정부는 6월 5일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응 강화방안’을 내고 관계 부처 합동으로 예방에 나섰다. 주요 내용은 △농식품부 차관을 단장으로 한 ‘ASF 대응 관계부처 협의체’ 운영 △접경지역 ‘심각’ 단계 예방조치 실시 △남은 음식물 자가 급여 금지(7월 중)와 특별관리지역 확대 등이다. 

    정부가 발 빠르게 ASF 대응에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 조치로 애꿎은 돼지농가만 피해를 입게 생겨 문제가 되고 있다. 돼지를 키우는 농가는 대체로 사료를 급여하지만 일부는 학교, 군부대, 직장 급식소 등에서 나오는 음식물을 수거해 급여한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잔반 급여 농가는 257개로, 이 가운데 외부 업체를 통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설비를 마련해 급여하는 농가가 173개다. 이들 잔반 급여 농가에서 사육하는 돼지는 국내 전체 돼지의 1%인 11만2000여 마리다. 

    정부가 잔반 급여 금지조치를 취하고 나선 이유는 중국 내에서 잔반 급여가 감염 경로로 의심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올해만 ASF로 100만 마리 넘는 돼지가 폐사했는데 감염된 농가의 44%가 잔반 급여 농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역시 ASF 감염 농가의 35%가 잔반 급여 농가로 드러났다. 



    정부가 이 같은 조치를 취하자 잔반 급여 농가는 즉각 반발했다. 정부 허가를 받고 잔반 급여 설비를 갖춰 운영해왔고, 잔반 수거 후 그대로 급여하는 게 아니라 열처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것. 농식품부가 지난해 8월 내놓은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에 따르면 ASF 바이러스는 70도에서 30분간 가열하면 사라진다고 한다. 이에 잔반 급여 농가에서는 문제없다는 의견이다. 

    경남지역에서 12년간 잔반 급여로 연평균 돼지 3000여 마리를 키워온 김진규 씨는 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사료 농가와 잔반 급여 농가는 시설부터 다르다. 열처리 시설과 운반시설 등을 2억 원 들여 구비했고, 매년 환경부로부터 위생 검사를 받고 있다. 잔반 급여를 위해 매일 열처리 과정을 1시간씩 거치고, 환경부 규정에 따라 80도에서 30분간 끓인다. 중국이나 러시아 농가의 경우 열처리 여부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와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농가는 ‘수거 중단’ 해제 요구

    북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해 국내 전파가 우려되는 가운데 6월 1일 인천 강화군 한 양돈농장에 출입통제 안내문이 붙었다. [뉴시스]

    북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해 국내 전파가 우려되는 가운데 6월 1일 인천 강화군 한 양돈농장에 출입통제 안내문이 붙었다. [뉴시스]

    이들은 6월 10일부터 각 급식소의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하지 않는 단체행동에 들어갔다. 정부가 잔반 급여 금지조치를 철회할 때까지 손해 보더라도 수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이 수거해온 음식물쓰레기의 양은 하루 1200여t으로 집계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하루 평균 음식물쓰레기의 8%에 해당한다. 

    관련 급식소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워하는 상황이다. 부산의 한 고교 급식소에서 근무하는 영양사 A씨는 “10여 년 동안 거래해온 음식물쓰레기 수거 농가가 하루아침에 거부하고 나서 당황스럽다. 급하게 다른 거래처를 찾아 급식에 차질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불안한 상황을 이어가야 할지 답답하다. 문제가 빨리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잔반 급여 농가 측은 정부가 갑작스레 7월부터 잔반 수거 중단조치를 강행한다면 관련 농가들이 사멸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장덕호 전국음식물사료축산연합회(음사연합회) 부회장은 “농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잔반 5t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는 데 비용이 3억 원가량 들어간다. 분쇄시설, 멸균시설, 이동시설 등이다. 또 수거 트럭과 인력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초기비용이 많이 들지만 사료 급여에 비해 유지비가 적은 편이라 대부분 선택한다. 정부에서 사료 급여로 일괄 바꾸라고 하면 투자비용 회수도 못할뿐더러, 설비를 교체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잔반 급여를 제대로 하는 것이 사료 급여보다 ASF 감염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남 함안에서 사육동물을 관리하는 임효재 수의사는 “학교나 군부대, 병원, 대형 급식소에서 나오는 잔반은 조리된 음식물이라 1차적으로 가열된 상태다. 이후 잔반 급여 농가에서 열처리를 한 번 더 하기 때문에 ASF 감염 가능성은 낮다. 외신을 보면 중국에서 잔반 급여 농가 이외에 사료 급여 농가에서도 ASF가 발생했는데, 공장에서 사료를 배합하는 도중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사료가 잔반보다 안전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6월 5일 환경부는 잔반 급여 금지조치 발표와 함께 잔반 급여 농가에 사료 구매 자금과 축사시설 현대화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잔반 급여 농가 측은 ‘잔반 수거 중단 해제’만 요구하는 상황이다. 장 부회장은 “정부가 지원한다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애초에 농가들이 잔반 급여를 선택한 것은 사료 급여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소규모 농가라 잔반 급여로 비용을 절감해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정부가 사료 급여로 강제 전환시키면 운영을 지속할 수 없다”고 답답해했다. 

    이에 환경부는 6월 12일 음사연합회와 잔반 급여 농가 측 사람들을 만나 의견을 청취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환경부 폐자원에너지과 관계자는 “6월 10일 잔반 급여 농가의 집단행동 이후 관계 부처 직원들이 모여 회의했고, 지속적으로 관련 농가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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