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웃돕기는 사회의 비염을 고치는 것”

이태훈 머리앤코글로벌한의원 대표원장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19-05-1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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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코가 막히면 입으로 숨을 쉬면 되지만, 세균과 미세먼지는 걸러주지 못합니다. 코 뒤에 있는 비강(鼻腔)에는 수많은 솜털과 점막이 있어 공기가 통과하는 0.25초 사이에 세균의 80% 이상을 걸러주고, 온도 역시 체온과 비슷하게 올려줍니다. 이러한 작업을 하기 위해 코에는 5개의 동맥이 몰려 있습니다.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입을 벌리고 자는 버릇부터 고쳐야 합니다.” 

    특이한 이력의 한의사가 있다기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머리앤코글로벌한의원을 찾아갔다. 이태훈(55) 대표원장은 대뜸 한의학이 아닌 서양의학 원론부터 꺼냈다. 

    “조건이 같으면 동일 결과가 나오는 것이 과학인데, 그러한 과학의 대표가 의학입니다. 이제는 한의학도 과학적이 돼야 합니다. 사상(四象)이나 오행(五行)으로 풀어가니 구체적이지 않고 모순도 많습니다.”

    비염은 폐와 코 기능 활성화하면 나아

    이태훈 원장의 캄보디아 의료 선교 활동 모습. [사진 제공 · 이태훈]

    이태훈 원장의 캄보디아 의료 선교 활동 모습. [사진 제공 · 이태훈]

    이 원장의 전문 분야는 비염과 중풍 치료. 그는 한약에 거의 의지하지 않고 비염을 치료해왔다고 했다. 

    “오행 이론에 따르면 폐에 화기(火氣)가 있으면 비염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폐 자체가 뜨거워지는 건 아닙니다. 심장이 약하면 피의 흐름이 약해집니다. 이를 ‘허혈’, 심하면 ‘울혈’이라고 합니다. 폐로 간 피의 흐름이 약해져 정체되면 약간의 열을 낼 수 있는데, 이를 한의학에서는 ‘폐에 화기가 찼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온몸이 냉한데 폐에 미열이 있는 것을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국 폐와 코로 피가 잘 가게 하면 비염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다. 

    “폐와 코는 한 덩어리로 움직인다고 해서 ‘비폐(鼻肺)반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폐가 약하면 코도 약해집니다. 필터 및 난방기 기능을 하기 위해 많은 피를 사용해야 하는 곳이 코인데, 심장이 약한 사람은 피가 코로 원활하게 가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기능이 저하돼 콧물이 나오게 되고, 이를 비염이라고 하는 거죠. 그러나 이것은 조직이 분해되는 염증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폐와 코로 피가 원활히 가게 해 두 곳의 기능이 활성화하면 치료가 쉽습니다.” 

    이 원장의 인생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결혼하고 아들을 하나 낳은 뒤 남편과 헤어졌다. 다시 결혼해 이 원장을 낳고 또 이혼했다. 생계가 어렵던 그의 어머니는 두 살 된 이 원장을 남의 집에 맡기고 일을 해야 했다. 그는 “여러 집을 거치며 자라면서 잘못한 것이 없는데 얻어맞고 미움을 많이 받았다”며 “중2 때 세상이 불공평하게 여겨져 자살을 준비했는데, 윤리 선생님이 ‘절대자인 창조주가 모든 사람에게 소명을 줬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내 소명이 무엇인지 찾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남의 집 살이, 신용불량 등 파란만장한 인생

    이 원장은 소명을 찾고자 열심히 공부해 1983년 경희대 한의학과에 들어갔다. 그때 비로소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이화여대 앞에서 노점상을 하며 경희대에 다닐 때 서울대 법대를 다니던 형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소명을 찾아야 한다는 의지로 ‘동의보감’을 통째로 외우며 공부해 한의사가 됐다. 

    그가 차린 한의원에 환자가 몰려들었다. 기독교에 귀의한 그는 자신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돕고자 번 돈의 상당액을 불우이웃돕기에 내놓았다. 그렇게 7년을 보내다 직업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중풍 환자를 고쳤다고 자부했는데, 전에 치료했던 환자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내 실력에 대한 심각한 회의가 들어 평소 해보고 싶었던 제빵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이화여대 앞에 건강빵 전문점을 열었는데 한의사가 건강빵을 만든다고 화제가 돼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업은 쉽지 않았다. 제빵점을 접은 그는 다른 사업에 도전했다. 택배 및 물류시스템 사업에 뛰어들고, 경북 영천에서 강모래를 캐내는 사업도 해봤다. 그리고 또 실패해 순식간에 큰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는 본업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빚쟁이를 피해 문을 연 한의원의 수익으로 어렵게 빚을 갚아나갔다. 그리고 불우이웃돕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는 “그제야 내가 교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용불량자가 됐을 때도 어렵게 이웃을 도왔는데, 도와야 한다는 당위에 따라 도운 것 자체가 교만이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제 코로 드나드는 숨처럼 이웃돕기를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 2월에는 캄보디아 씨엠립 지역에서 400명을 진료하는 의료 선교를 하고 왔다. 또 최근에는 서울 은평구 지역아동센터에서 호흡기질환을 앓는 어린이 12명을 무료로 치료하고 있다. 그는 이웃을 도와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웃이 울고 있는데 내가 웃으면 그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인생은 배라고 생각합니다. 그 배는 나만 탄 게 아니라, 어릴 적 나만큼 어려운 사람들도 함께 타고 있습니다. 내가 한의학을 배운 것은 그들을 돕기 위해서고, 그것이 내 소명이라고 믿습니다. 돈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사랑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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