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의 가성비 항공권

항공권이 썩는 상품이라고?

원가보다 경쟁 따라 가격 결정 … 얼리버드, 경유편, 출발지 등 고려해야

  • 김도균

    dgkim100@gmail.com

    입력2019-05-1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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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 예약은 여행 준비의 시작입니다. 예산과 휴가 기간을 고려해 여행을 준비하기에, 항공권 구입 가격은 원하는 여행을 할 수 있느냐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름휴가 때 유럽을 갔다 오려 했지만 항공권이 비싸 포기하고 가까운 곳을 다녀오는 경우가 적잖습니다. 

    남들은 싼 항공권을 잘도 찾는 것 같은데 왜 내 눈에는 비싼 항공권밖에 안 보이는 걸까요. 인터넷에서 ‘항공권 싸게 구입하는 꿀팁’을 찾아보고, 며칠 동안 웹사이트 10여 개를 뒤졌는데도 말이죠. 이유는 인터넷 꿀팁이 사실 꿀팁이 아니거나 특정 기간 또는 조건에서만 적용되는 꿀팁이기 때문입니다. 

    항공권을 싸게 사는 꿀팁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여행 시기나 목적지에 따라 항공권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 당연히 상황에 맞는 전략이 필요하죠. 쉽고 빠른 정답은 없습니다. 항공권을 싸게 구입하는 방법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항공권은 썩는 상품, 썩기 전 팔아야 ~

    ‘장사꾼이 손해 보면서 판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는 얘기가 있죠. 보통 원가 이하로 팔면 손해가 납니다. 대다수 상품에는 맞는 말입니다.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게 난다면 누군가는 싼 곳을(시기에) 사서 비싼 곳을(시기에) 파는 장사를 하겠죠. 

    하지만 항공권은 조금 다릅니다. 항공권은 음식처럼 썩는 제품입니다. 썩기 전 팔아야 합니다. 이런 속성 탓에 어떤 때는 말도 안 되게 싼값에 팔고, 또 어떤 때는 몇 배의 가격에 팔기도 합니다. 이는 항공권이 양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항공권의 영문 이름은 여권의 영문 이름과 동일해야 합니다. 대부분 이름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누군가가 쌀 때 사서 비쌀 때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없다는 뜻입니다. 같은 이유로 싸게 산 항공권은 취소가 불가능하거나 취소 수수료가 비쌉니다. 



    항공사는 되도록이면 좌석을 채워 비행기를 띄워야 합니다. 빈 좌석이 있으면 그만큼 손해니까요. 또한 고객들로부터 최대한 비싼 값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항공사는 어떻게 항공권을 팔아야 목적을 달성할까요?

    얼리버드는 싸게, 출발 임박하면 비싸게

    가장 기본은 얼리버드입니다. 최소한의 좌석은 원가나 그 이하로 먼저 채우고, 그것을 넘기면 비싼 가격으로 좌석을 채우는 겁니다. 호텔도 마찬가지 방법을 사용하지만 항공권은 그 차이가 훨씬 큽니다. 바로 옆자리 승객과 항공권 가격이 5배까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서두르지는 마세요. 비수기 항공권을 10개월 전 예약하는 것은 아직 특가 운임이 나오기 전이라 오히려 비쌀 수 있습니다. 

    이는 수요에 따른 가격 결정입니다. 성수기는 수요가 어느 정도 보장되기 때문에 애초부터 항공권 가격을 비싸게 책정하거나 운임이 싼 부킹 클래스 좌석을 할당하지 않습니다. 성수기 때는 무조건 항공권을 일찍 구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출발이 6개월 이상 남았더라도 저렴하다 싶으면 사는 겁니다. 특히 외국 항공사의 경우 6개월 이상 남은 성수기 항공권을 비수기 가격으로 판매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이는 추석 및 설 연휴, 5월 초 연휴 등에도 해당합니다. 같은 이유로 주말 출발 항공권도 평일 출발 항공권보다 일찍 구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직항은 비싸게, 경유편은 싸게

    동일 구간을 A항공사는 직항으로 가는 항공권을, B항공사는 경유지에 들렀다 가는 항공권을 판다면 일반적으로 후자의 항공권이 저렴합니다. 경유편은 목적지까지 가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갈아타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항공사들은 직항으로 운항하지 않는 구간의 항공권을 팔까요? 저비용항공사(Low Cost Carrier·LCC)를 제외한 풀 서비스 항공사(Full Service Carrier·FSC)는 대부분 대형항공기를 투입하는 장거리 구간의 항공권을 팔아 수익을 남깁니다. 그런데 직항 수요만으로는 대형항공기의 좌석을 채우기가 쉽지 않아 주변 다른 도시의 수요를 흡수하려는 겁니다. 출발지 주변 도시(또는 목적지 주변 도시)의 수요를 흡수함으로써 장거리 구간의 승객을 채우고 이익도 내는 거죠. 단거리 위주로 출발지와 목적지를 직항으로 연결하는 LCC는 당연히 예외입니다.

    자국 출발은 비싸게, 타국 출발은 싸게

    대한항공은 한국 출발 항공권을 비싸게 팝니다. 반대로 타국 출발 항공권은 싸게 팔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누구나 자국 항공기가 가장 편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타국에서의 영업력이 자국에서보다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대한항공은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는 항공권을 한국보다 일본, 중국에서 더 싸게 팝니다. 자국이 아닌 곳에서 판매하는 항공권도 있지만, 경유편이기 때문에 싸게 팔기도 합니다.

    경쟁이 적으면 비싸게, 심하면 싸게

    서울-카트만두 구간을 직항으로 연결하는 항공사는 대한항공뿐입니다. 당연히 가장 비쌉니다. 1회 이상 경유하는 다른 항공사들의 경우 직항보다 가격이 싸지만, 대기 시간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습니다. 직항 항공권과 연결 스케줄이 가장 나쁜 경유 항공권의 가격은 최저가 기준 3배까지도 벌어집니다. 카트만두행 경유편을 이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서울-카트만두 항공권을 판매하는 항공사는 대부분 경유지에서 스톱오버를 허용합니다. 그것도 무료인 경우가 많습니다. 싼값에 여러 도시를 여행할 수 있는 거죠. 물론 그만큼 여행 기간은 길어집니다.

    LCC는 왜 쌀까

    LCC는 비용을 절감해 항공권을 싼값에 판매하는 항공사입니다. LCC가 비용을 줄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단일 기종으로 운영 효율을 극대화합니다. 단일 기종을 대량 구매함으로써 단가를 낮추고, 조종사와 승무원들의 훈련 비용을 줄이며, 항공기 유지 · 관리 비용도 절감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노선 확장이나 다른 노선으로의 대체 투입도 용이하죠. 단일 기종이라 대개 대형항공기가 없기 때문에 장거리 운항을 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중·장거리를 운항하는 LCC도 있지만 비용 절감 효과가 줄어듭니다. 

    둘째, 유료 서비스를 극대화합니다. 기내식을 돈 받고 팔거나, 위탁수하물 비용이 항공요금에 비해 비싼 편입니다. 또 추가 비용을 내고 사전 좌석 지정을 하지 않으면 복도도 창가도 아닌,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앉아야 하죠. 좋은 서비스를 받으려면 돈을 더 내고, 그렇지 않으면 고생을 감수하라는 겁니다. 

    셋째, 포인트 투 포인트(Point to Point) 운항을 합니다. FSC는 허브공항을 기점으로 허브 앤드 스포크(Hub & Spoke) 방식으로 운항합니다. FSC는 주력 구간인 장거리 노선에 승객을 채우고자 주변 도시에서 허브공항으로 승객을 운송한 후 목적지로 가죠. 따라서 환승 개념이 생기고 운임 규정도 복잡합니다. 이에 반해 LCC는 출발지와 목적지를 일대일로 연결합니다. 당연히 환승 개념이 없고 운임도 편도 위주로 책정돼 매우 단순합니다. 그만큼 특정 노선이 이익을 내고 있는지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LCC가 특정 노선을 운항한다는 것은 사전 시장조사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LCC는 출발이 임박한 싼 항공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출발지와 목적지를 일대일로 연결하는 LCC에도 난제가 하나 있습니다. 항공 수요가 일정하지 않다는 겁니다. 비행기를 성수기에는 주 7회 띄우고 비수기에는 주 3회만 띄울 수는 없습니다. 참고로 항공사가 수익을 극대화하려면 승객들이 타고 내릴 때와 정비 시간을 제외하고 항공기가 늘 공중에 떠 있어야 하거든요. 

    당연히 비수기에는 빈자리가 많습니다. 각 LCC가 특가 이벤트를 벌이는 이유가 바로 이거 때문이죠. 판매 부진이 예상되는 날은 얼리버드로 원가에 한참 못 미치는 가격에라도 좌석을 채우려는 겁니다. 하지만 출발일이 다가오는데도 좌석 판매가 너무 미진한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날짜 조합에 10만 원 안팎으로 후쿠오카를 왕복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렇다고 LCC 항공권을 날짜에 임박해 사는 게 무조건 유리한 것도 아닙니다. 도시마다 상황이 다르고, 비수기라도 의외로 판매 상황이 좋을 수 있거든요. 당연히 항공권 가격은 얼리버드 때보다 올라갑니다. 출발이 임박한 싼 항공권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싼값의 항공권에 맞춰 여행지를 결정하고 날짜도 맞추는 겁니다.

    FSC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의 항공권이 종종 발견

    출발이 임박한 FSC 항공권을 싸게 살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허브 앤드 스포크 방식 때문에 항공권 1장으로 4번 이상 타는 경우가 흔하고, 많으면 10번도 넘어갑니다. 해당 구간뿐 아니라 다양한 수요로 항공기 좌석이 채워지는 거죠. 아무리 비수기라 해도 출발 날짜가 임박하면 어느 정도 좌석은 채워집니다. 특정 구간만 텅텅 비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각 FSC는 가끔 말도 안 되는 싼값에 항공권을 팔기도 합니다. 지난 호에 소개한 에티하드항공의 모스크바 왕복항공권입니다. 지금은 특가 운임 가격이 조금 올라 54만 원이지만 당시에는 46만 원이었습니다. 아부다비 2박 스톱오버 무료 혜택까지 감안하면 에티하드는 땅 파서 장사하나 싶을 정도의 가격이죠. 에티하드가 모스크바 왕복항공권을 이렇게 싼값에 팔려고 의도한 건 아닙니다. 아부다비에서 24시간 이하로 머문다면 26만 원을 더 내야 하거든요. 바꿔 말하면 아부다비에서 24시간 이상 체류하면 항공권 가격이 마법처럼 싸진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가격의 항공권이 계속 나오는 원인은 각 FSC의 허브 앤드 스포크 방식의 운항과 복잡한 운임 규정에 있습니다. 너무 복잡해 항공사도 그렇게 싼 가격이 산출될지 예상을 못 하는 거죠. 물론 항공사의 복잡한 속사정은 몰라도 좋습니다. 여행자는 그냥 싸고 좋은 항공권을 살 수 있다면 그만이니까요.

    결론 : 싸게 파는 걸 산다

    항공권 가격은 원가가 결정하지 않습니다. 경쟁이 결정합니다. 항공사는 전체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가격을 결정합니다. 특정 구간은 계속 손해 보더라도 팔고, 또 다른 특정 구간은 계속 엄청난 이익을 남긴다는 거죠. 말도 안 되는 싼값에 항공권을 파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항공권이 싸다고 홀대받는 건 아닙니다. 같은 밥 먹으며 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싼 게 비지떡이 아니라는 뜻이죠. 굳이 비싼 돈 주고 항공권을 살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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