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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도시 양봉으로 천연꿀 따고 환경도 지키고

양봉기업 ‘꿀건달’

도시 양봉으로 천연꿀 따고 환경도 지키고

[사진 제공·김민경]

[사진 제공·김민경]

어릴 때부터 자전거, 롤러스케이트 등 바퀴 달린 물건을 좋아했다. 열 살 무렵 친구들과 어울려 비포장도로를 달리거나, 과속방지턱을 넘는 모험을 즐기다 넘어지기 일쑤여서 무릎과 팔꿈치가 성할 날이 없었다. 상처에 묻은 흙을 살살 씻어내고 일명 ‘빨간약’을 발랐다. 몸 여기저기 바르면 어쩐지 가족의 관심과 걱정이 내게 더 집중되는 것 같아 기분 좋기도 했다. 

몸에 난 상처에는 빨간약이 제격이었다면 시름시름 아플 때는 꿀만 한 것이 없었다. 감기 기운이 돌면 엄마는 꿀물을 타주고, 건조한 입술에도 촉촉이 꿀을 발라줬다. 입맛 없을 때는 고소한 미숫가루에 꿀을 섞어 묽게 개주고 떡을 말랑하게 구워 꿀을 얹어줬다. 커서는 다 큰 딸이 숙취에 시달리는 꼴을 보기 싫어하면서도 꿀물 한 사발 타서 건네곤 했다. 그래서인지 엄마와 떨어져 사는 지금도 꿀은 상비약처럼 준비해둔다.


꿀벌이 꽃꿀 72시간 동안 먹고 뱉어 벌꿀 생성

도시 양봉으로 천연꿀 따고 환경도 지키고
꿀은 여전히 ‘진짜냐, 가짜냐’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꿀은 크게 천연꿀과 사양꿀로 나뉘는데 둘 다 진짜 꿀이다. 천연꿀은 꿀벌이 꽃꿀로 만든 것, 사양꿀은 꽃꿀 대신 설탕이나 다른 당분을 먹고 만든 꿀이다. 재료가 어떤 것이든 벌꿀은 벌의 몸을 통해 만들어져야 진짜다. 

꿀벌은 꽃이 피면 꽃꿀과 꽃가루를 부지런히 모으기 시작한다. 꿀벌은 수확한 꽃꿀을 72시간 동안 먹었다 뱉었다를 반복하며 벌꿀로 만든다. 이 과정을 통해 물기가 증발되고 효소가 섞이면서 투명한 설탕물 같던 자당(蔗糖)이 끈적끈적한 과당(果糖)으로 바뀐다. 수분 함량도 70%에서 40% 정도로 떨어진다. 꿀벌은 날개 움직임으로 꿀에 공기를 쐬어 수분 함량을 20%까지 떨어뜨린다. 그다음 벌집에 꿀을 넣고 밀랍으로 밀봉해 보관한다. 


로열젤리(위)와 벌통 속의 벌.

로열젤리(위)와 벌통 속의 벌.

꽃꿀만큼 필요한 것이 꽃가루다. 꽃가루는 단백질이 대부분이고 지방, 비타민, 미네랄도 함유돼 있다. 훌륭한 영양 공급원인 꽃가루는 로열젤리의 재료다. 일벌은 꽃가루를 먹고 로열젤리를 생산해 여왕벌에게 먹인다. 꽃가루는 꿀벌의 애벌레에게도 꼭 필요한 식량이다. 애벌레는 좋은 단백질을 먹고 5.5일 동안 몸집이 1300배나 커진다. 꿀벌은 꽃가루를 꿀주머니가 아닌 몸의 잔털에 잔뜩 묻혀 가져온다. 가끔 벌통 앞에 떨어져 있는 작은 덩어리들을 볼 수 있는데, 꽃가루가 뭉친 화분이다. 화분은 꽃가루 알레르기만 없다면 인간도 그대로 먹을 수 있다. 



꿀의 맛, 향, 색은 벌꿀을 채집한 식물, 즉 밀원(蜜源)에 따라 다르다. 산벚나무꿀은 연한 살구색을 띠며 향이 은은하고 맛도 산뜻하다. 아카시아꿀은 맑은 황백색이며 정갈하고 깨끗한 단맛이 난다. 색이 진하고 향이 구수한 팥배나무꿀은 1년에 3~4일밖에 딸 수 없어 귀하다. 밤꿀은 다른 꿀에 비해 단맛이 적고 쌉싸래한 맛이 난다. 어른들 사이에서 약꿀로 통하는데 실제 항산화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감로꿀은 구수한 향이 나며 살짝 쌉싸래한 맛도 느껴진다. 천연꿀이 가진 성분은 탄수화물, 단백질, 미네랄, 무기질, 비타민 등 비슷하지만 밀원에 따라 맛과 향이 완전히 다르다. 


꿀벌이 모이는 벌통과 벌이 집을 짓고 꿀을 저장하는 소비(벌집). 소비에 붙은 벌은 살살 떼어내고, 소비 표면에 있는 밀랍은 살짝 벗겨내야 한다(왼쪽부터). [사진 제공·김민경]

꿀벌이 모이는 벌통과 벌이 집을 짓고 꿀을 저장하는 소비(벌집). 소비에 붙은 벌은 살살 떼어내고, 소비 표면에 있는 밀랍은 살짝 벗겨내야 한다(왼쪽부터). [사진 제공·김민경]

사람은 꿀벌을 키우는 양봉(養蜂)을 통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는다. 벌꿀, 화분(꽃가루), 최고급 단백질인 로열젤리, 벌이 집을 짓는 소재인 밀랍, 벌이 세균이나 침입자를 막으려고 방어용으로 집에 발라두는 프로폴리스가 있다. 마지막으로 벌침도 약으로 쓰기 위해 수집한다. 

꿀벌은 공동체를 위해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생활을 한다. 하지만 병에 약하다. 면역체계를 전담하는 유전자가 다른 곤충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예전에는 아파트 단지 내 화단에도 벌이 윙윙 날아다녀 무서운 적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도시에서 벌 보기가 하늘의 별 보기만큼 어렵다. 

농촌에서도 벌이 줄어들고 있다. 인류가 즐겨 먹는 100대 농작물의 약 70%가 벌의 수분에 의존하고 있다. 벌이 사라지면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다양한 작물도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벌의 도움이 없어도 먹을 수 있는 식품은 곡식과 옥수수 정도라고 한다. 실제로 2006~2007년 벌이 원인 모를 ‘군집 붕괴 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으로 사라지는 바람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아몬드 생산에 큰 차질을 빚기도 했다. 벌은 생태계의 건강함을 가늠할 수 있는, 살아서 끝없이 윙윙거리는 지표다.


45년간 양봉일 해온 아버지와 아들이 운영

채밀기에 소비(벌집)를 넣어 꿀을 받는다. 사진은 일반인 체험용인 작은 채밀기. [사진 제공·김민경]

채밀기에 소비(벌집)를 넣어 꿀을 받는다. 사진은 일반인 체험용인 작은 채밀기. [사진 제공·김민경]

그런 의미에서 도시 양봉을 하고 있는 양봉기업 ‘꿀건달’은 도시 생태계의 파수꾼 같은 역할을 한다. ‘꿀이 아주 건강하고 달콤하군’이라는 의미의 ‘꿀건달’은 서울 삼각산과 북한산에서 벌을 키운다. 1974년부터 양봉일을 해온 아버지 원익진 씨를 아들 원강효 씨가 돕고 있다. 베테랑 아버지는 누구보다 벌의 상태를 빨리 파악한다. ‘이상 기온으로 봄꽃이 한꺼번에 피면 다양한 꽃꿀을 딸 수 없다’ ‘여름 폭염은 가혹하지만 감로꿀이라는 선물을 준다’ ‘더는 벌과 함께 서울에서 겨울나기가 힘들다’ 등은 모두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다. 

꿀벌은 4월 말부터 부지런히 꽃꿀을 모은다. ‘꿀건달’의 두 부자도 함께 바빠진다. 4월 말 산벚나무를 시작으로 아카시아, 팥배나무를 거쳐 6월까지 밤꿀을, 폭염에는 감로꿀을 딴다. 감로꿀은 무더운 여름철 나뭇잎이나 나무껍질에서 분비되는 수액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여름이 끝나가면 경기 고양을 거쳐 강원 철원까지 이동해 꿀을 딴다. 날이 차가워지면 벌과 함께 겨울날 준비를 한다. 올봄에는 냉해가 심해 벌이 꿀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꿀건달’ 운영하는 원익진-원강효 부자
[사진 제공·김민경]

[사진 제공·김민경]

좋은 꿀, 진짜 꿀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나. 

“일단 ‘사양꿀’보다 ‘천연꿀’을 택하면 된다. ‘꿀건달’처럼 믿을 수 있는 소규모 양봉업자에게 꿀을 직접 사 먹는 것도 방법이다. 소규모 업자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 어렵다면 농협의 ‘안심벌꿀’을 추천한다. 소규모 양봉가들이 생산한 양질의 천연꿀을 판매하는 브랜드다.” 

꿀은 오래 두고 먹어도 괜찮나. 


“꿀의 유통기한은 2년으로 정해져 있지만 타액이나 이물질이 섞이지 않으면 상온에서 오래 두고 먹어도 괜찮다. 온도가 내려가면 꿀이 굳거나 흰 결정이 생길 수 있는데 영양성분의 변화는 없다. 굳어서 땅콩버터 같은 질감의 꿀은 오히려 빵, 치즈, 과일에 발라 먹기 좋다. 찬 온도에서 한번 굳은 꿀은 온도가 올라가도 다시 묽어지지 않는다. 묽게 만들고 싶다면 중탕을 하면 되는데, 향이 다소 옅어진다. 우리나라 꿀의 품질 기준은 까다로운 편이다. 꿀의 수분 함량이 20%로 낮기 때문에 향, 맛, 색이 거의 변질되지 않는다. 참고로 중국 꿀의 수분 함량은 26%이다.”






주간동아 2019.05.03 1187호 (p74~76)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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