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65

2018.11.23

기획 | 위기의 한국 제조업, 대책은?

현대차의 후진, 車 산업 붕괴 막으려면

① 자동차산업

  • 강지남

    layra@donga.com

    입력2018-11-26 11: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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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성차, 늦었지만 SUV 트렌드 좇아가야

    • 부품업계, 스마트 모빌리티 대응 위해 구조조정 ‘필수’

    • 미래 대응, 전기차  ·  수소차 투 트랙이지만 우선순위는 전기차에

    • 정부, 컨트롤타워는 세우고 규제는 치우고

    [뉴스1]

    [뉴스1]

    제조업, 그중에서도 자동차는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업종으로 꼽힌다. 첨단기계의 역할이 큰 반도체와 달리 자동차 1대에는 부품이 2만여 개 들어가고, 그만큼 관련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낸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의 17%가 제조업에 종사하는데, 그중 12%가 자동차산업에 속한다. 100명 중 최소 2명이 자동차산업에 몸담고 있는 것이다. 그 가족과 주변으로 확장되는 연관 효과까지 고려한다면 ‘자동차 밥’을 먹고사는 국민의 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그러한 ‘자동차 일자리’에 경고등이 켜졌다. 1년 새 1만 개 가까운 일자리가 사라졌다. 고용노동부가 집계하는 고용보험 피보험자 통계에 따르면 자동차 제조업 피보험자 수가 10월 기준 39만1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40만 명)보다 9000명 줄었다. 업계에서는 군산공장을 폐쇄한 한국GM에서 2000여 명, 자동차 부품업계에서 8000여 명이 실직했을 것으로 추산한다.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뉴시스]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뉴시스]

    문제는 이러한 자동차 일자리의 형편이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현대자동차(현대차)의 3분기 영업이익은 2889억 원으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영업이익 3000억 원을 밑돌았다. 1.2%에 불과한 영업이익률은 같은 기간 일본 도요타의 성적(영업이익률 7.9%)과 비교할 때 충격이 더 크다. 완성차의 실적 악화는 부품업체들에게 고통으로 전가된다. 은행 등 금융권은 자동차를 ‘요주의 업종’으로 분류하고 대출 만기 연장을 거절하는 등 돈줄 관리에 들어갔다. 자동차 부품업체 부도율은 4.4% 수준으로 전체 중소기업 부도율 3.2%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알려진다.

    단기 대책에 ‘급급’

    내년 세계 자동차시장 전망도 밝지 않다. 신한금융투자는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자동차 수요가 동시에 둔화되는 상황은 자동차산업이 처음 겪는 것”이라며 내년 세계 자동차시장 성장률을 0.8~1.5%로 전망했다. 그나마도 국내 자동차업계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전기자동차시장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이 조만간 자율주행으로 운행되는 로봇택시 서비스를 개시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스마트 모빌리티(Smart Mobility) 분야 글로벌 경쟁자들의 움직임도 매우 빠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상은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한국은 단기적으로나 중·장기적으로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 자동차산업이 이 정도로 심각하게 벽에 부딪힌 상황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11월 14일 자동차산업발전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완성차 및 부품업계는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장관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내수 활성화 △부품업계 금융 지원 △환경규제 부담 완화 등을 요청했다. 



    지난달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권에 “자동차 부품업계 개별 업체의 재무·경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여신 회수 등 은행권의 ‘비 오는데 우산 뺏는 행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11월부터는 신용보증기금 및 기술보증기금을 통한 1조 원 규모의 보증 프로그램이 가동됐다. 그러나 자동차 부품업계는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1차 협력업체들로 구성된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으면 버틸 수 있는 기업이 전 산업 영역을 통틀어 몇 개나 되겠느냐”며 “연매출 1000억 원 이하 중소 부품업체만 보증해주는 것을 중견기업으로까지 확대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의 총 여신은 28조 원으로 적잖은 규모다. 

    한편 완성차업계는 정부에 환경규제 부담 완화를 바라고 있다. 환경부는 최근 경유차에 주차료 · 혼잡통행료 감면 등 인센티브를 주던 ‘클린디젤 정책’을 10년 만에 폐기하기로 하면서 ‘친환경차 의무판매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친환경차 의무판매제란 완성차업체별로 전체 판매량의 일정 비율을 전기차 등 친환경차로 채우는 제도다. ‘친환경차 협력금제’ 도입 또한 추진한다. 이는 대기오염 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자동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로부터 부담금을 받아 친환경차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에 대해 완성차업계는 “친환경차 의무판매제와 친환경차 협력금제가 동시에 시행되면 중복 규제가 된다. 또 국내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선진국의 환경규제 정책을 들여오면 버텨낼 재간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은 지난 40년간 자동차산업을 육성해오면서 선진국의 환경규제를 대거 들여와 이미 환경 및 안전 관련 규제 수준이 매우 높은 편”이라며 “여기에 더해 새로운 규제를 도입한다면 자동차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오히려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미국 등 선진국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론도 있다. 유럽, 미국에 이어 중국도 내년부터 친환경차 의무판매제를 개시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도입하지 않을 경우 전기차 등 친환경차 분야에서 경쟁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관련 업계가 한데 모인 자동차산업발전위원회가 처음 구성된 것은 지난해 2월이다. 그때 첫 번째 회의를 했고, 1년 9개월이 지난 최근에야 두 번째 회의가 소집된 것. 회의 내용도 중·장기적 전략 모색에서 당장 급한 불을 끄자는 단기 대책으로 바뀌었다. 첫 회의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2017년 초반에 민관(民官)이 합심해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을 자동차에 접목함으로써 자동차산업의 돌파구를 마련해보자는 취지로 논의체가 마련됐다”며 “그간 정부가 바뀌고 한국GM 사태가 발생하는 등 여러 이슈가 있었다 해도 뚜렷한 성과를 낸 것이 없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이번 2차 회의 내용은 우리 자동차산업이 미래 지향적인 논의를 할 여유조차 없을 만큼 어려워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자동차 부품업계 역량 강화 기회로

    6월 폐쇄된 한국GM 군산공장과 11월 13일 경기 화성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를 찾아 금융 지원을 약속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왼쪽부터). [동아DB]

    6월 폐쇄된 한국GM 군산공장과 11월 13일 경기 화성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를 찾아 금융 지원을 약속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왼쪽부터). [동아DB]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업계는 먼저 현대차가 한발 늦었더라도 글로벌시장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대차가 3분기 어닝쇼크를 낸 데는 리콜 등으로 7800억 원에 달하는 품질 비용이 발생한 탓도 크지만, 여전히 세단 위주의 제품 라인업으로 미국과 중국 등에서 증가하는 SUV 수요에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 ‘로이터’는 ‘한때 떠오르는 별이던 현대차가 그 빛을 잃었다’는 제목의 11월 5일자 기사에서 ‘SUV에 허를 찔렸다’고 한 브라이언 스미스 현대차 북미법인 최고운영책임자의 발언을 소개했다. 

    셰일가스 개발 붐으로 휘발유 가격이 낮아지자 미국에서는 SUV 인기가 높아졌다. 2008년까지만 해도 세단이 SUV보다 더 많이 팔렸지만, 2017년 세단 판매 비중은 35%, 픽업트럭을 포함한 SUV 판매 비중은 65%로 크게 역전됐다. 중국에서도 SUV 판매 비중이 2010년 12%에서 2017년 40%로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현대차의 미국 판매고 가운데 SUV 비중은 36%로 GM의 76%에도, 업계 평균 63%에도 한참 못 미친다. 

    현대차는 새로 출시하는 대형 SUV ‘팰리세이드’를 11월 28일 미국 LA오토쇼에서 첫 공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코나(소형), 투싼(준중형), 싼타페(중형), 팰리세이드(대형) SUV 라인업으로 글로벌시장 공략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쌍용차도 내년 준중형 모델인 코란도C 후속 모델을 출시하며 SUV 판매에 매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자동차시장 환경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SUV 비중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SUV를 강화해가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어차피 한국이 글로벌 자동차 트렌드를 주도할 수 없는 이상, 지금이라도 빨리 쫓아갈 수밖에 없다”며 “짧은 시간 안에 차량 품질을 높이거나 신차를 개발할 수 없는 형편이므로 과거 미국시장에서 효과를 봤던 것처럼 서비스 기간을 대폭 확장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산업부는 업계 의견을 수렴해 이달 중으로 자동차 부품산업 지원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대출 보증 등 단기적 지원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기회에 부품업계 구조조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차 등 국내 완성차업계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 GM 도산 등으로 반사이익을 보며 호황을 누리자, 그에 따라 자동차 부품업체 수도 증가했다. 국내 완성차 연간 생산능력은 460만 대, 부품업체는 4600여 곳이다. 미국은 연간 생산능력이 1200만 대인 데 반해, 부품업체는 5300여 곳에 불과하다. 생산능력 대비 부품업체 수가 미국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셈이다. 게다가 실제 완성차 생산 대수는 2011년 466만 대로 고점을 찍은 뒤 하락을 거듭해 지난해 411만 대까지 떨어졌다. 올해는 400만 대 이하로 내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현재는 전기차, 자율주행차, 수소전지차 등 자동차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때다. 자동차 부품업계도 기계기술 중심에서 전자기술, 고안전·고편의, 친환경 기술을 갖춘 곳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이에 정부가 구조조정 펀드를 마련해 부품업계 간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하고, 역량 있는 업체에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해 새로운 자동차 패러다임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자동차산업학회 회장인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M&A로 규모를 키우고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해 스마트 모빌리티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부품업체들을 키워야 한다”며 “매출이 현대차에만 종속되지 않고, 국내외 다양한 판매처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부품업체가 많아져야 국내 자동차산업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3년 이상, 매년 10억 달러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입한 견실한 부품업체는 80곳 정도”라며 “이들 위주로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하고, 주로 1차 부품업체인 이들이 2, 3차 부품업체를 끌고 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차량공유, 돈 말고 정보 벌 생각으로

    미국, 중국 등을 중심으로 대형 SUV 판매가 늘고 있다. FCA의 지프(Jeep  ·  왼쪽)와 11월 말 정식 공개되는 현대자동차 ‘팰리세이드’. [뉴스1, AP]

    미국, 중국 등을 중심으로 대형 SUV 판매가 늘고 있다. FCA의 지프(Jeep  ·  왼쪽)와 11월 말 정식 공개되는 현대자동차 ‘팰리세이드’. [뉴스1, AP]

    당초 스마트 모빌리티는 최첨단 충전, 전자동력 기술이 융합된 소형 개인 이동수단을 말했다. 예를 들어 세그웨이, 전동자전거, 전동스쿠터 등이 스마트 모빌리티에 해당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율주행차, 차세대연료차, 차량공유 서비스 등을 스마트 모빌리티로 본다. 

    따라서 이것이 자동차산업의 당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좇아가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자율주행이 실현되고 차량공유가 확산되면 차량 수요가 감소한다. 미국 연구기관 리씽크 엑스, 글로벌 컨설팅 회사 KPMG 등은 2030년 자동차 수요가 현재 대비 50~80%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 집 앞에서 편리하게 자율주행차를 빌려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차량공유 서비스에 눈을 돌리고 있다. 유럽의 경우를 보자. 2008년 벤츠의 모회사 다임러는 독일에서 ‘카투고(Car2Go)’를 설립, 운전자가 차를 빌려 쓸 수 있는 서비스를 개시했다. 경쟁사 BMW는 2011년 ‘드라이브 나우’란 이름의 카셰어링 사업을 시작했다. 올해 초 이 두 회사는 각자의 차량공유 서비스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이외에도 차량호출 서비스인 ‘무블’ ‘마이택시’도 이 플랫폼에 통합될 예정이다. 하지만 실제 차량공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들은 완성차업체보다 우버, 그랩, 디디추싱처럼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앱)을 기반으로 한 정보기술(IT) 플랫폼 회사들이다. 완성차 업체들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국 완성차업계도 체질 변화를 도모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9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무브(MOVE)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 기조연설에서 “현대차를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업체’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그랩에 2억5000만 달러(약 2828억 원)를 투자했다. 현대차는 앞으로 인공지능, 첨단물류 분야에도 투자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호근 교수는 “국내에서는 각종 규제 때문에 스마트 모빌리티 진출이 어렵다. 국내 업계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대차가 스마트 모빌리티 분야의 해외 투자에 나선 것은 늦은 감이 있어도 좋은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투자가 빠르게 이익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낮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 이익을 기대하고 스마트 모빌리티 시장에 뛰어들면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차량공유 및 자율주행 선두 업체들은 대부분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1위 우버는 올해 2분기 실적이 매출 28억 달러(약 3조 원)에 영업손실 8억9100만 달러(약 1조77억 원)였다. 최 교수는 “구글, 우버 등은 당장 이익을 내겠다고 차량공유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이동 및 생활 전반에 관한 정보를 모으는 데 주력한다. 추후 이를 가공해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것이고, 전 세계 차량공유업체의 지분을 사들이고 있는 소프트뱅크도 먼 미래를 기대하기 때문”이라며 “국내 자동차업계도 이런 점을 이해하고 체질 변화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차세대 자동차의 동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후보는 전기와 수소. 전기차는 이미 상용화돼 도로를 달리고 있지만, 수소전지로 달리는 차를 도로 위에서 만나기는 아직 어렵다. 

    전기차(EV)에 비해 수소전지차(FCEV)의 가격은 월등히 비싸다. 현재 국내시장에 출시된 수소전지차인 현대차 ‘넥쏘’가 7000만 원대 중·후반인데, 동급 전기차인 현대차 ‘코나’는 2000만 원대 중·후반이다. 가격 차이가 3배에 달한다.

    일단 발등의 전기차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4일 프랑스 파리 도심의 수소충전소를 방문해 현대차의 수소전지차 ‘투싼’을 운전하는 택시기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4일 프랑스 파리 도심의 수소충전소를 방문해 현대차의 수소전지차 ‘투싼’을 운전하는 택시기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충전소도 전기차가 압도적으로 많다. 전 세계 수소전지차 충전기는 300여 기로, 전기차 충전기 43만 기와 비교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2017년 말 기준). 이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충전기는 고압 콘센트만 설치하면 되지만, 수소전지차 충전기는 수소를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다. 비용도 기당 30억 원가량 든다. 쉽게 폭발하는 수소의 특성을 감안해 고압수소 취급 교육을 받은 인력이 상주하며 충전소를 관리해야 한다. 

    그럼에도 자동차업계는 수소에 미래가 있다고 본다. KPMG가 1월 공개한 ‘글로벌 자동차업계 경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업계 임원의 77%가 ‘수소전지차가 진정한 미래 자동차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답했다. 테슬라 등 전기차 전문업체를 제외하고 자동차업체 대부분이 수소전지차 개발 및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수소전지차가 갖는 장점은 많다.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는 데 최소 30분이 걸리는 전기차와 달리 수소전지차는 길어야 5분이면 충전을 완료할 수 있다. 전기차의 동력원인 리튬이온전지는 충전과 방전을 반복할수록 출력이 떨어진다. 리튬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주행거리도 전기차는 400km가량인 데 비해 수소전지차는 1회 충전으로 600~700km까지 주행할 수 있다. 

    이에 국가 차원에서 ‘수소경제’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수소를 생산, 저장, 운송하는 인프라를 만드는 일은 개별 완성차업체가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국가가 산업 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수소경제를 위한 인프라 확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100기의 수소전지차 충전소와 2800여 대의 수소전지차를 보급했고, 올해 2월에는 수소전지차 충전소 보급을 위한 특수목적법인 ‘일본 H2 모빌리티’를 설립했다. 이 법인에는 가스업체는 물론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완성차업체, 일본개발은행 등 16개사가 참여한다. 민간사업자들이 연 1~2% 저금리 대출을 받아 충전소 설립에 나서면 정부가 같은 액수를 충전소 설립 보조금으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당분간 자동차시장에서는 전기차가 수소전지차 보다 우위에 설 것으로 보인다. 먼저 수소가 전기에 비해 구하기 힘든 원료이고, 그만큼 가격도 비싸기 때문이다. 수소전지차 넥쏘는 1km를 달리는 데 연료비로 83원이 들지만, 전기차 코나는 20원이면 충분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추후 기술개발이 이뤄지면 수소전지차의 이점이 많겠지만, 당장은 이를 극복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위에서 언급한 KPMG 보고서에서 자동차업계 임원들은 수소전지차를 진정한 미래 자동차로 꼽더라도, 당장 5년 내 투자할 분야로는 72%가 플러그인, 69%가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꼽았다(복수 응답).

    1~2년 후 기회 사라질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9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무브(Move)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왼쪽). 현대자동차의 소형 SUV 전기차 ‘코나 일렉트릭’. [뉴시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9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무브(Move)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왼쪽). 현대자동차의 소형 SUV 전기차 ‘코나 일렉트릭’. [뉴시스]

    현재 연료용 수소를 모으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천연가스를 태워 수소로 변화시키거나, 석유 정제 과정에서 자연 발생한 ‘부생 수소’를 한데 모으는 것이다.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로 바꿀 수도 있지만, 생산되는 수소량에 비해 소요되는 전력량이 너무 커 경제성이 없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부생 수소 가운데 연간 16만t가량을 수소전지차에 활용할 수 있다. 이는 약 8만 대의 수소전지차를 운행할 수 있는 양이다. 수소전지차가 그 이상 보급된다면 천연가스를 태워야 하는데, 이 경우 수소전지차 연비가 천연가스 차량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 수소전지차에 사용되는 촉매제 백금이 매우 비싸다는 것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경쟁 국가에 비해 부족한 연구개발비 규모를 고려할 때 당장은 시장 수요가 크게 성장하고 있는 전기차에 더 큰 비중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국내 자동차산업의 연간 연구개발비는 7조3000억 원가량으로 독일 49조 원, 일본 37조 원에 비해 한참 부족한 형편이다. 

    당장 글로벌 자동차 수요 둔화에 대한 대응부터 미래 자동차, 스마트 모빌리티로 전환까지 국내 자동차산업에 투하된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이를 위해 정부가 자동차산업 컨트롤타워를 조속히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존 자동차산업은 산업부 소관이지만 스마트 모빌리티는 국토교통부, 자동차 구매 관련 세제는 기획재정부, 환경규제는 환경부, 금융 지원은 금융위원회, 노조 문제는 고용노동부 관할이다. 김용진 교수는 “전기차, 스마트 모빌리티 대응에 늦은 것은 물론, 내연기관차의 경쟁력도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1~2년 후에는 아예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며 “연관 부처가 모두 참여하되 기민하게 움직이는 컨트롤타워 설립이 현 시점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광주형 일자리’, 불발탄 되나
    광주 측 수정 제안에 현대차 ‘난색’

    11월 16일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 관계자들이 울산시 북구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형 일자리 추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11월 16일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 관계자들이 울산시 북구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형 일자리 추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광주형 일자리란 광주시를 최대주주로 하고 기업 투자를 유치해 연간 10만 대 규모의 완성차 위탁생산 공장을 세우는 것이다. 연 임금을 기존 평균(9200만 원)보다 낮은 3000만~4000만 원으로 하되, 광주시가 복지 혜택을 제공해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높이게 된다. 광주시는 직접고용 1000명, 간접고용을 포함하면 1만2000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다고 본다. 

    2014년 윤장현 당시 광주시장의 선거공약으로 처음 제시된 광주형 일자리는 올해 6월 현대자동차(현대차)가 지분투자 의향을 밝히면서 현실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6월 19일로 예정됐던 합작법인 투자협약식이 광주시와 현대차의 이견으로 무기한 연기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현대차 노조가 “광주형 일자리가 자동차산업 전반을 위기로 밀어넣고 있다”며 반대에 나서 더욱 고착 상태에 빠졌다. 

    11월 14일 광주시와 지역 노동계가 어렵사리 최종 합의문을 도출했지만, 이번에는 현대차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현대차 측은 “기존 합의와 180도 달라졌다”며 황당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합의문은 ‘동일노동-동일임금’ 조건을 내건 것으로 알려지는데, 현대차는 그에 따라 광주와 가까운 기아차 공장의 연평균 9300만 원 수준으로 임금이 높아질 여지가 있다고 본다. 임금 상승도 애초 물가에 연동하기로 했다 매년 노사가 합의해야 하는 사안으로 바뀌었다고 알려진다. 

    광주시 투자협상단은 11월 19일부터 서울에 머물며 현대차와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그러나 주요 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최종 마감시한인 12월 2일까지 타결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현대차 노조와 민주노총은 광주형 일자리에 강하게 반발하며 총파업 결의에 나선 상태다. 정치권에서는 “광주가 안 된다면 군산 등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것을 검토해볼 필요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광주형 일자리는 강성 노조에 시달리는 기업, 일자리가 목마른 노동자, 지역경제 살리기가 시급한 지역 모두가 승자가 되는 새로운 대안일까, 아니면 현실을 외면한 채 무리하게 추진하다 불발된 허상일까. 업계 한 관계자는 “노조와 지역이 눈높이를 낮췄더라면 좋은 일자리 상생 모델이 될 뿐 아니라, 국내 자동차산업의 고질적인 고임금 체계를 해소하는 작은 대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피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연간 10만 대 생산능력으로 자립할 수 있는 완성차업체는 일부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에 불과하다”며 “애초부터 사업성이 없는 무리한 계획이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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