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62

2018.11.02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비결은 ‘뇌’

한계 극복 위한 마음가짐이 성공 여부에 중요한 역할

  • 입력2018-11-05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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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레스트산 정상 모습. [shutterstock]

    에베레스트산 정상 모습. [shutterstock]

    1875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열기구를 타고 하늘 높이 오르는 관광이 한창 유행이었다. 한 번은 열기구를 탄 승객 3명 가운데 2명이 공중에서 사망했다. 열기구가 너무 높이 올라가면서 산소 부족으로 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열기구가 7920m 높이까지 오르자 세 사람은 미리 챙겨 간 산소통을 착용할 생각도 못 한 채 정신을 잃었다. 

    알다시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산이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에베레스트산은 말 그대로 ‘죽음의 산’이었다. 과학자를 포함한 대다수는 사람이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오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약 8000m 높이까지 열기구를 타고 올라간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것이 그 증거였다. 

    그럴 만했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의 공기량은 보통 사람이 생활하는 곳과 비교했을 때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등반하면서 고산지대의 공기량에 몸이 적응한다 해도 한계가 있을 터였다. 더구나 에베레스트산의 혹독한 추위와 무서운 눈바람까지 염두에 둔다면 그 산을 오르는 일은 말 그대로 자살 행동처럼 보였다.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산 오르기

    1924년 에드워드 노턴의 등반 실패는 이런 통념을 더욱더 강화했다. 노턴은 에베레스트산 정상까지 300m도 남지 않은 8570m 지점까지 올라갔다 발길을 돌렸다. 그는 명백히 산소 부족이 원인으로 보이는 ‘사물이 둘로 보이는 증상’ 탓에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웠다. 

    여기서 비운의 등산가 조지 맬러리가 등장한다. 맬러리는 휴대용 산소통을 짊어지고 다시 에베레스트산 정상 정복에 나섰다. 그는 1923년 미국 ‘뉴욕타임스’ 기자와 인터뷰에서 “어째서 에베레스트로 돌아가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라는 멋진 말을 남긴 터였다. 결국, 그 산에서 맬러리는 돌아오지 못했다. 



    맬러리를 비롯한 수많은 등산가의 목숨을 앗아간 에베레스트산 정상이 인간에게 발자국을 허락한 것은 1953년이었다. 에드먼드 힐러리는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1953년 5월 29일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최초로 정복했다. 노턴의 전철을 밟지 않고자 힐러리는 휴대용 산소통의 도움을 받았다. 

    다음 세대 산악인 레이놀드 메스네르는 힐러리의 성공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수백 명의 짐꾼’과 ‘산소 공급 장치’에 의지해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앞선 등산가의 희생이나 과학자의 경고에도 코웃음을 쳤다. 그의 관점에서는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오르는 일, 즉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산악인의 사명이었다. 

    결국 메스네르는 성공했다. 그와 페터 하벨러는 1978년 5월 8일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올랐다. 메스네르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1980년 세계 최초로 혼자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다시 한 번 오른 데 이어, 1986년까지 8000m가 넘는 14개 봉우리를 모두 산소통 없이 정복했다. 

    메스네르와 그의 뒤를 이은 산악인의 잇따른 성공을 보면서 과학자들은 자신의 통념을 수정해야 했다. 이 대목에서 캐나다 육상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자 스포츠 과학자인 알렉스 허친슨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만약 에베레스트산의 정상이 8848m가 아니라 9000m였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누군가는 언젠가 산소통 없이 정상을 밟지 않았을까.”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힘의 원천은?

    전문 등산가라 해도 해발 8000m 이상의 산을 오르는 일은 위험하다. [shutterstock]

    전문 등산가라 해도 해발 8000m 이상의 산을 오르는 일은 위험하다. [shutterstock]

    허친슨이 자신의 책 ‘인듀어’(다산북스)에서 던지는 질문은 도발적이다. 1978년 메스네르가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오르자마자 산소통 없이 등반에 나서 성공한 사례가 늘었다.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는 산악인의 신체, 장비, 날씨 등에 변화가 없었음에도 이렇게 갑자기 성공이 잇따른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정답은 ‘뇌’에 있었다. 

    한 과학자 팀은 고도가 높을수록, 즉 산소 농도가 적어질수록 뇌에서 다리 근육으로 보내는 신호가 약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심지어 근육에 산소가 공급되는지 여부는 결정적 변수도 아니었다. 또 다른 과학자 팀은 (근육의 산소 양에 변화가 없는데도) 뇌 속 산소 양이 적어지자 실험 참가자 다수가 탈진하는 현상을 확인했다. 

    이런 실험의 의미는 명백하다. 노턴이나 메스네르가 정상에서 발걸음도 떼지 못할 정도로 극한의 피로와 육체적 한계를 경험한 이유는 산소 부족 때문만이 아니었다. 정상 상태와 비교할 때 3분의 1에 불과한 산소 부족 사태에 맞닥뜨린 그들의 뇌가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자 선제적으로 근육의 움직임을 제한한 것이다. 

    메스네르가 산소통 없이도 에베레스트산 정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이후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메스네르가 해냈다면 나도 충분히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밟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산악인들에게 생겼으리라. 산소통이 없으면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나 공포를 잠재우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혹시 이런 마음가짐의 변화가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는 등산가의 뇌를 산소 부족에 좀 더 무디게 반응하게 만들었을까. 현재로서는 메스네르나 다른 산악인의 뇌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또 이런 주장을 밀어붙여 ‘보통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슈퍼맨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비약해서도 곤란하다. 

    다만 인간의 마음, 정확히는 뇌가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가끔 메스네르처럼 인간 한계에 도전해 성공하는 이들이 있다. 피나는 노력으로 인간 한계를 극복하는 그들은 예외 없이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남다른 투지, 즉 마음가짐으로 극복했다. 

    물론 이런 불굴의 도전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 최초로 산소통 없이 8000m급 14좌에 올랐던 김창호 대장 등 한국인 5명이 10월 13일 히말라야산맥 등반 도중 눈폭풍을 만나 사망했다. 비록 그들은 세상을 떴지만, 인간 한계에 도전했던 그들의 마음가짐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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