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3

2015.11.16

최강희 감독이 ‘최강’인 이유

끊임없는 고민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망으로 이뤄낸 K리그 역대 최다 우승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5-11-13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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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강희 감독이 ‘최강’인 이유

    11월 8일 제주 유나이티드FC와 서귀포 원정경기에서 1-0으로 이겨 정규리그 우승을 조기에 확정한 전북 현대모터스 선수들이 환한 표정의 최강희 감독(위)을 헹가래 치고 있다.

    4월 12일 이후 단 한 번도 1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시즌 내내 압도적 위상을 자랑한 ‘완벽한 1위’였다. 골프로 치면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한 셈이다.

    팀당 38경기씩 치르는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5’가 종착역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디펜딩 챔피언’ 전북 현대모터스가 통산 4번째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전북은 11월 8일 제주 유나이티드FC와 36라운드 원정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2년 연속 우승에 입맞춤했다.

    2009년 처음으로 K리그 패권을 차지했던 전북은 2011년과 2014년에 이어 다시 최고 자리에 올랐다. 2003년 K리그 3연패를 달성했던 성남 일화에 이어 12년 만에 2연패에 성공했다. 4번째 별을 가슴에 품으며 명실상부한 K리그 최고 명문 구단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했다. 전북의 4차례 영광을 모두 함께한 ‘봉동이장’ 최강희(56) 감독은 박종환 전 성남FC 감독, 차경복 전 성남 일화 감독(이상 3회)을 제치고 K리그 역대 최다 우승(4회) 사령탑으로 올라섰다.

    봉동이장 전성시대

    전북 선수단 클럽하우스는 완주군 봉동읍에 있다. 최 감독에게 봉동이장이란 별명이 붙은 것은 친근한 외모와 함께 누구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의 인품을 반영한 결과다.



    최 감독은 젊었을 때 굴곡진 선수 생활을 거쳤다. 우신고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그저 그런 선수였다. 대학 진학에 실패해 유니폼을 벗을 생각을 하다 가까스로 충의(육군 축구단)에 입단하며 선수 생명을 이어갔고, 이어 김호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한일은행에 몸담으며 서서히 꽃을 피웠다. 김호 감독이 프로축구 울산 현대 사령탑으로 옮기면서 덩달아 프로 선수 기회를 잡은 그는 28세에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되며 1988년 서울올림픽과 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월드컵 무대까지 밟은 그는 스타는 물론, 무명 선수들에게도 ‘믿음을 주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을 쌓았다.

    1995년 수원 삼성 트레이너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최 감독은 2001년까지 수원 코치를 지냈고,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서 대표팀 코치를 맡기도 했다. 2005년 처음 전북 지휘봉을 잡아 2011년까지 팀을 이끌었고, 이후 잠시 대표팀 사령탑에 취임해 우리나라를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은 뒤 2013년 하반기부터 다시 전북에 복귀했다.

    올해로 창단 21주년을 맞은 전북의 역사는 최 감독 부임 전과 후로 명확히 구분된다. 최 감독 부임 전까지만 해도 전북은 한국 프로축구에서 그 비중이 크지 않았다. 2003년과 2005년 2차례 FA컵(Football Association Cup)을 제패하고, 2004년 K리그 슈퍼컵 타이틀을 거머쥐긴 했으나 명문이라 부르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나 최 감독 부임 이후 전북의 위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최 감독은 초보사령탑으로 2005년 FA컵을 제패한 뒤 이듬해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패권까지 차지했다. 2009년 호남팀 최초로 K리그 타이틀을 품에 안으면서 강호의 입지를 다지는 등 K리그를 4차례나 평정했다. 전북은 수원 삼성이나 FC서울, 울산 현대 등 ‘빅클럽’들을 넘어 한국 프로축구 최고 명문 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아울러 최 감독은 한국 프로축구 사상 최고 감독으로 올라섰다.

    전북, 28년 만의 새 역사도 쓸까

    하지만 그는 만족을 모른다. 안주하지도 않는다. 최 감독은 “4번째 우승을 차지한 지금이 오히려 고비”라고 했다. 전북이 올 시즌 중반 클래식 득점 1위를 질주했던 에두를 돈 싸움에 밀려 중국에 빼앗겼듯, 전북만이 아니라 K리그 구단들은 ‘중국의 황사머니’와 ‘중동의 오일머니’에 고전하고 있다. 최 감독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경쟁하기 위해선 축구팬은 물론, 일반인도 알 수 있는 ‘큰 선수’가 한두 명 필요하다”며 ‘더욱 강력한 전북’을 위한 공격적 투자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 “홈구장을 찾는 관중 수가 예전보다 많이 늘었고 관심도도 부쩍 증가했다”며 “올해 우승했지만 시즌 초반부터 1위를 하면서 이기는 경기에 급급하다 보니 전북의 색깔을 잃었다. 관중 수 등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선 지금이 바로 고비”라고 강조했다. 챔피언 자리에 다시 올랐지만 그는 또 스스로에 대한 채찍을 준비하고 있다. 최 감독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은 이 같은 끊임없는 고민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망일 터이다.

    전북이 일찌감치 리그 2연패에 성공한 가운데 이제 관심은 시즌 후 진행될 시상식에서 전북이 감독, 최우수선수(MVP), 영플레이어 등 주요 개인 부문상 3개를 싹쓸이할 수 있을지로 모아진다. 1983년 출범한 한국 프로축구에서 한 팀이 3개 부문상을 모두 가져간 것은 87년 대우(현 부산 아이파크)가 유일하다. 당시 대우는 이차만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했고, 정해원과 김주성이 각각 MVP와 신인상을 받았다. 그동안 우승팀이 감독상과 MVP를 동시에 차지한 적은 많지만, 영플레이어상(2013년부터 신인상 대체)까지 함께 가져간 것은 87년 대우뿐이다.

    2015년 감독상은 최강희 감독이 사실상 예약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최근 수년간 우승팀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전례가 있고 최 감독은 프로축구 ‘최다 우승 사령탑’이라는 금자탑도 쌓았다.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 최용수 서울 감독 등이 경쟁자로 꼽히지만 최 감독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기는 역부족이다.

    전북이 내세우는 MVP 후보는 이동국, 영플레이어상 후보는 이재성이다. 13골·5도움을 기록하며 팀 우승에 큰 힘을 보탠 이동국은 MVP 유력 후보 가운데 한 명이다. 만약 이번에도 상을 받으면 사상 최초로 4번째 MVP를 차지하며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6골·5도움으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이재성은 성남 황의조, 수원 권창훈, 포항 손준호 등과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다. 최 감독은 “늘 푸른 소나무처럼 팀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왔다”며 이동국이 우승에 크게 기여한 바를 칭찬하고, “다른 후보들과 달리 얼굴이 동안이다. 상 취지에 가장 맞다”는 농담을 건네며 이재성의 수상을 응원하는 등 일찌감치 ‘득표전’에 돌입했다. 축구 기자단 투표로 결정하는 감독상, MVP,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는 12월 1일 한국프로축구연맹 주최 시상식에서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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