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4

2018.09.05

경제

“남북한 화폐통합 논의 시작 하자”

현재는 달러, 위안화 지급 후 신고…“中 위안화 경제권에 종속 막아야”

  • 입력2018-09-04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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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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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 진출한 기업인 A씨는 물품 대금을 달러로 지급했다 황당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자신이 외국환관리법 위반으로 1년 이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것. A씨는 “통일부가 거래를 승인했는데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억울해하지만 통일부 승인뿐 아니라, 외국환관리법상 외화를 지급한 사실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도 신고해야 한다. 대북 진출을 꿈꾸는 남한 기업가 가운데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4·27 판문점선언과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기나긴 경색 국면을 지나 회복세에 들어섰다. 비록 8월 2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 계획을 취소하긴 했지만 협상 기조는 유지되고 있고, 북한 비핵화에 대한 국민의 기대도 어느 때보다 크다. 반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이 많다.

    북한 통화량 우리 돈으로 60조 원 추정

    그래서일까. 정부도 기존 남북경제공동체 건설 구상에 더욱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구상’에 따르면 부산에서 중국 베이징까지 연결되는 철도 건설, 지하자원이 풍부한 북한 단천지역에 자원개발산업단지 조성, 남북중러를 연결하는 전력망 사업 구축 등을 목표로 한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하나의 섬처럼 돼버린 남한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신경제구상은 분명히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북한이 수용한다 해도 개성공단처럼 폐쇄되지 않고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 즉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난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남북한 화폐통합 논의가 필요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의 대북제재를 차치하더라도 한반도 신경제구상이 주로 철도, 도로 등과 같은 국가 간 대규모 인프라 사업에 치중돼 있어 북한의 수용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 개성공단 폐쇄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북한에 투자한 남한의 자산이 사실상 무상 몰수되는 것과 같다. 한반도 신경제구상이 남한의 신성장동력이 되려면 남한의 다수 기업, 특히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북한에 안정적으로 투자되면서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북한의 현 금융시스템은 투자자 처지에서 회의적이다. 

    따라서 남북경협의 기초로 인프라 사업은 필요하지만, 이와 동시에 남한의 기업들이 안심하고 북한에 투자할 수 있는 금융환경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 방안으로 남북한 화폐통합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법률자문을 하면서 만난 많은 북한 관련 기업인은 다음과 같이 하소연한다. 



    “거래는 자본과 물류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원활하게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걸림돌이 많으면 교역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현재 북한과 거래하려면 현금결제 시 북한 측에서 미국 달러나 중국 위안화만 받기 때문에 이런 화폐들을 지급해야 한다. 환전수수료만 해도 손해가 발생하는데, 통일부 승인 절차까지 거쳐야 하고 거래한 뒤에는 외국환관리법상 기획재정부 장관에게도 신고해야 한다. 미신고 시 1년 이하 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 북한과 자주 사업을 하는 사업가뿐 아니라 법률가들도 쉽게 알기 힘든 사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프라에 투자한들 어떻게 남북 간 경제협력이 활성화되겠나. 남북이 같은 화폐를 쓰면 법적·경제적 걸림돌이 제거돼 남북 교류가 비약적으로 활성화되고 교역량도 대폭 늘어날 거다.” 

    수차례 화폐개혁에 실패한 북한은 현재 신뢰성 있는 금융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고, 이 상황에서 우리가 철도, 자원 개발, 전력망 사업 등 하드인프라 구축에 투자한다 해도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따라서 다른 나라가 북한의 하드인프라 구축에 눈독을 들이는 상황에서 소프트인프라인 금융에 투자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느 나라도 과감하게 북한 금융에 투자하려 들지 않을 터라 남한 측에만 주어지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북이 단일화폐를 사용하는 게 가능하느냐 하는 점이다. 

    먼저 남북한 화폐통합은 국민 정서에 부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화폐교환 비율과 북한의 적정 통화량이 남한의 경제력 범위에 있어야 한다. 남북한 화폐교환 비율을 다룬 학자들의 논문을 근거로 계산해본 결과 북한의 적정 통화량은 우리나라 돈으로 60조 원 정도로 추정된다. 남한 경제력이 북한의 40배이고, 4월 기준 한국의 M2(광의의 통화)가 약 2600조 원임을 감안한 수치다. 북한의 적정 통화량 60조 원이 얼핏 큰돈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 삼성전자의 지난해 이사분기 매출이 60조 원가량임을 감안할 때 한 나라 안에서 돌아다니는 통화량의 적정 수준이 그 정도라면 결코 많은 것은 아니다.

    “北 개성공단에서 시작해 경제특구로 확대”

    다만 북한도 처음부터 단일화폐가 북한 전역에 유통되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단일화폐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전 남북한 화폐교환 비율에 따라 중간결제 수단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시작으로 단일화폐를 점진적으로 유통해간다면 남한의 경제력 범위에서 북한의 수용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북한 경제특구로까지 단일화폐 유통을 서서히 확대해간다면 남한 기업으로 하여금 북한에서 번 돈을 북한에 재투자하게 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통일 비용을 마련하는 선순환 구조도 만들 수 있다. 

    남북한 화폐통합에 관한 학자들의 기존 논의를 살펴보면 주로 동독과 서독의 화폐통합, 유럽연합(EU)이 등장할 때 유로화 화폐통합을 예로 든다. 그러나 이들 나라와 지역에는 중국처럼 거대한 위안화시장이 없었다. 남북경제공동체는 그 과정에서 반드시 남북한 화폐통합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데, 만약 중국이 북한시장을 위안화화(化)한다면 남북한 화폐통합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 중국은 최근 달러에 대항해 위안화 허브 전략으로 위안화를 공공연히 기축통화로 만들려 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 금융시장이 위안화로 대체되기 전 서둘러 남북한 화폐통합을 이룰 필요가 있는 것이다. 중국의 위안화 허브 전략에 비춰볼 때 남북한 화폐통합이 제외된 남북경제공동체 구상과 한반도 신경제구상은 물거품이 될 개연성이 높은 만큼 현 시점에서 남북한 화폐통합을 반드시 짚어야 한다. 

    북한은 최근 개방 의지를 보이고 있고, 주변 강대국들도 북한 같은 정치적·지리적 요충지를 지나칠 리 없다. 중국 위안화가 공식 화폐처럼 사용되는 북한 실정을 감안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은 중국 경제권에 종속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남북한 화폐통합의 골든타임은 북한이 완전히 비핵화되고 강대국 자본이 북한에 밀려들어오기 전까지인데, 어쩌면 2~3년도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한반도 신경제구상 가운데 도로나 철도 연결은 아직 국민에게 먼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남북한 화폐통합은 당장 서민의 지갑에 들어 있는 돈이 바뀌는 일인 만큼 예민한 문제고, 파급 효과도 매우 크다. 만약 9월에 개최될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한 화폐통합과 북한 비핵화를 연계해 과감하게 협상을 이어간다면 북한은 어떤 의견을 보일까. 

    남북경협을 위해 북한에 합리적인 제안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각종 문제를 극복하려면 합리와 비합리를 뛰어넘는 초합리적 선택이 필요할 수도 있다. 명목 화폐에 불과한 북한 원화를 남한 원화와 일정 비율로 교환하면서 단일화폐를 유통하자는 논의가 초합리적 선택이 될지 지켜볼 일이지만, 이 시점이 화폐통합을 생각해보는 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오연 변호사는…
    •1974년 대전 신탄진 출생 
    •경희대 법대 졸업 ·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석  ·  박사통합과정 수료 
    •사법시험 45회 •세무사   ·   변리사 
    •공유변호사단 ‘럭션’ 회장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법률자문변호사
    •저서 : ‘공공의 적’ ‘남북의 황금비율을 찾아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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