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0

2018.08.08

북한

北 ‘빛나는 조국’이 비핵화를 이끌어낼까

9·9절 위한 ‘제2의 아리랑 공연’ 계기로 경제제재 완화 노려

  • 입력2018-08-04 20: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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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 모습. 북한은 아리랑의 후속인 ‘빛나는 조국’ 공연을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맞춰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뉴시스]

    북한의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 모습. 북한은 아리랑의 후속인 ‘빛나는 조국’ 공연을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맞춰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뉴시스]

    7월 31일 북한 ‘노동신문’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요구하는 기사를 실었다. 정부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을 4년 만에 허용했다. 백현 롯데관광개발 사장이 원산 크루즈 여행이 가능하다고 발언한 것은 한 달 전쯤인 7월 2일이었다. 4·25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전 남측 예술단은 평양에서 ‘봄이 온다’를 공연했다. 가을로 예정된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서울에서 ‘가을이 왔다’를 열기로 했는데, ‘가을’을 향한 기업들의 행보가 시작된 것이다.

    미군 유해 55구 무료로 보내준 김정은

    지금 한국은 미·중과 종전선언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비밀리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종전선언 등에 대해 논의했다. 중국은 7월 31일 이를 확인해줬다. 그날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참석차 출국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종전선언은 우리 외교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은 종전선언에 부정적이다. 정 실장은 7월 20일 미국을 방문해 이 문제 등을 논의했다. 

    북한도 미국을 움직이려 한다. 그동안 6·25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에 대해 구(柩)당 약 3만 달러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한 푼도 받지 않고 55구를 보냈다. 북한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보내겠다고 했다 질질 끌었고, 그들이 ‘전승절’이라 부르는 정전협정 체결일(7월 27일)에 보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해 송환과 관련해 북한을 칭찬했다. 그는 싱가포르 회담 후 이런 칭찬을 ‘천연덕스럽게’ 이어오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평양 산음동의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조 공장 위성사진. [동아DB]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평양 산음동의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조 공장 위성사진. [동아DB]

    그런데 7월 30일자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정보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이 평양 산음동의 시설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2기를 제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군 소식지들은 미 해군이 F-35B를 탑재한 상륙모함 전투단을 일본으로 보냈고 이어 항모전투단도 보내려 한다고 보도했다. 증파된 미군 전력을 확인하고자 중국 항공기가 7월 27일 한일 방공식별구역에 침입했다. 한일 공군은 중국 항공기에 적극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정찰을 허용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나열해보면 한반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 문제는 북한 시각에서 봐야 좀 더 명료해진다. 북한은 단호한 외교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외길 외교를 하고 있다. 한번 정한 것은 관철하거나 실패를 확인할 때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펼치는 외교는 어떤 방향일까. 관계자들은 베이징에 있는 고려여행사(koryogroup.com)와 스웨덴에 있는 코리아컨설트(koreakonsult.com) 인터넷 홈페이지를 주목하라고 말한다. 



    코리아컨설트는 아직 아니지만, 고려여행사 홈페이지의 ‘집단체조(mass games)’ 카테고리에는 북한이 정권 수립 70주년인 9월 9일부터 ‘아리랑’을 이은 ‘빛나는 조국’을 30일까지 공연한다는 내용이 올라와 있다. VIP석은 800유로(약 104만7500원), 1등석은 500유로, 2등석은 300유로, 3등석은 100유로로 책정된 단체여행 프로그램 안내도 볼 수 있다. 향후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키워드가 바로 ‘빛나는 조국’이다. 

    북한은 5년 전까지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아리랑 공연을 했다. 운동장에서는 무용수들이 공연하고, 15만 석에 이르는 관중석 상당수에는 평양 학생들이 앉아 카드섹션을 펼쳤다. 그리고 박수부대로 동원된 평양시민들이 좌우에 앉아 있었다. 실제 관람객에게 배정된 자리는 본부석을 중심으로 1만5000석 정도였다. 북한은 올해 9·9절을 기준으로 ‘매일 밤 새로운 관광객 1만5000여 명을 맞는’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준비는 중국과 한국의 격려에 고무된 측면이 있다.

    남북중은 종전선언 하자는데, 미국은…

    중국 베이징에서 3차 북·중 정상회담(6월 20일)이 있은 직후인 6월 29일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제재는 상황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등을 폐쇄했으니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며 “중국인의 북한 여행을 허가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중국인의 북한 여행이 급증했다. 그러나 중국인만으로는 매일 밤 5·1경기장을 채울 수 없다. 

    이는 한국 정부가 움직여야 가능하다. 남북한 사업에 정통한 이들은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이 있기 전 노무현 정부가 1박 2일짜리 북한 관광상품 판매를 허용한 것을 기억한다. 평양을 저렴하게 방문하는 상품이 나온 덕분에 북한은 아리랑 관람객을 상당수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문재인 정부에서 대북사업을 하는 이들이 잊었을 리 없다. 그런데 이 같은 정책을 펼치려면 북한이 확실한 비핵화부터 해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 후 미국으로부터 제재 해제 언질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이 ‘빛나는 조국’ 모객에 들어간 것은 올해가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이라는 점과 함께 심각한 ‘외화 부족’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둘을 해결하려면 북한 처지에선 대북제재가 풀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미국을 만족시키는 비핵화가 이뤄져야 한다. 트럼프 정부는 이를 꿰뚫어 보고 핵실험장 폐쇄 등 초보적인 비핵화 수순을 이행한 김 위원장을 칭찬하면서도 대북제재를 견고히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종전선언을 함께 한다면 이는 대북제재를 낮춘다는 암시가 되니, 남북은 물론이고 중국도 미국과 종전선언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미국은 이를 피해가며 세 나라를 옭아매고 있다. 북한 관광을 허가한 중국을 대상으로는 강력한 무역제재를 가하고, 한국에 대해서는 북한산 무연탄을 수입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북한산 무연탄 수입에는 국내 2개 은행과 2개 업체가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면 이들은 달러 거래를 하지 못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의 기업과 은행을 상대로 제일 먼저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면 다른 나라도 한미동맹의 위기로 보고 한국과 거래를 줄일 수 있다. 이는 한국 경제를 뒤흔드는 큰 위협이다. 한국은 북한에게 미국을 만족시킬 정도로 통 큰 비핵화를 촉구하는 한편, 미국에게는 종전선언을 같이 하자고 부탁을 넣고 있다. 

    9월 9일 행사는 비핵화의 진전과 관련해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첫 공연부터 성황을 이루려면 북한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북제재가 일부라도 완화돼야 한다. 이러한 완화는 핵무기 제출 등 북한의 통 큰 행동이 먼저 있어야 하니 다시 공은 북한에게 넘어간다. 북한 처지에서 가장 좋은 구도는 광복절인 8월 15일 남북미중이 종전선언을 하고 9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이다.


    특수냐, 통 큰 비핵화냐

    중국 베이징에 있는 고려여행사 인터넷 홈페이지와 여기에 소개된 ‘빛나는 조국’ 관람 안내. 스웨덴 코리아컨설트도 북한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다. [고려여행사 홈페이지]

    중국 베이징에 있는 고려여행사 인터넷 홈페이지와 여기에 소개된 ‘빛나는 조국’ 관람 안내. 스웨덴 코리아컨설트도 북한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다. [고려여행사 홈페이지]

    그러나 9·9절에 문 대통령이 방북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이 열렸던 10월 4일 전후를 디데이로 잡아놓고 있다. 이에 따라 고려여행사는 ‘빛나는 조국’ 공연이 10월 초까지 연장될 수 있다고 밝혀놓았다. 이는 남북정상회담의 피날레를 ‘빛나는 조국’으로 장식하겠다는 뜻이다. 

    지금 남북한은 철도 연결 등 양측 당국이 할 수 있는 사업에 대해서는 거의 다 합의를 해놓은 상태다. 그러나 실행은 대북제재가 풀려야 할 수 있다. 제재만 풀리면 개성공단 재가동을 시작으로 남북 당국은 북한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하는 특수(特需)를 누릴 수 있다. 이러한 특수를 가늠케 하는 바로미터가 바로 상당수 핵무기를 내놓는 북한의 통 큰 비핵화 이행과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에 따른 ‘빛나는 조국’ 공연의 대성공이다. 

    북한 관광을 시작으로 북한 특수가 일어나면 문 대통령은 위축된 경기를 살리고 남북 화해까지 이끌어내는 역사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이렇게 미래는 장밋빛 일색인데, 대전제가 상당수 핵무기를 미국으로 보내는 북한의 통 큰 비핵화 이행이라는 것이 문제다. 

    중국은 저울질하다 북한 지지 쪽을 선택했고, 그 결과 미국으로부터 심각한 무역 압박을 받고 있으니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가능성에 직면한 문재인 정부는 쉽게 한쪽으로 기울지 못한다. 미국이 세 나라를 상대하니 1 대 3인데, 관점을 바꾸면 북한이 어렵게 세 나라를 상대하는 1 대 3으로 보이기도 한다.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김 위원장은 관광 명소인 마리나베이의 초대형 식물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와 배 모양을 한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전망대를 관람했다. 유학 시절 이후 오랜만에 자본주의의 화려함을 구경한 것이다. 그리고 요즘엔 북한 전역을 다니며 제대로 경제를 일으키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다. 과거 같았으면 부실공사를 한 이들을 고사총으로 쏴버렸을 테지만 지금은 말로만 다그치고 있다. 이는 9·9절을 앞둔 북한의 사정이 다급하다는 뜻이다. 

    정권 수립 70주년 행사 준비가 차질을 빚고 있는 이유는 외화 부족을 초래한 대북제재 때문이다. 열심히 하라고 다그칠수록 통 큰 비핵화 이행 문제로 돌아와버린다. ‘빛나는 조국’이 가을이 왔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9·9절 이전 김 위원장은 통 큰 결정을 내려야 한다. 미국 군사소식지와 미군 전력 이동을 알리는 웹사이트들은 일본에 증강되고 있는 미군 전력을 보란 듯이 계속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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