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2

2018.06.13

영주 닐슨의 글로벌 경제 읽기

| 금융 규제의 원칙 | 목욕물만 버리고 아기는 남겨둬라

  • 입력2018-06-12 11: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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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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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도 국제적인 수준의 금융 콘퍼런스가 자주 열린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금융 콘퍼런스에서는 거의 매번 규제에 대한 토론이 이뤄진다. 주로 규제 탓에 이것도 못 하고, 저것도 못 한다는 이야기들이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 듣는 것 같아 콘퍼런스에 참석할 때마다 식상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런데 2~3년간 한국에서 지내다 보니 금융인과 핀테크(금융+기술)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불평이 이해되기도 한다. 

    금융산업 규제는 다른 산업에서와 마찬가지로 필요악이다. 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원활한 금융환경을 도모하려면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하다. 그럼 언제, 얼마만큼의 규제가 필요할까.

    도드-프랭크 법안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5월 3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8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동아DB]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5월 3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8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동아DB]

    규제를 만들고 실행할 때는 무엇을 얼마만큼 규제해야 할지에 대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은 로레타 J. 메스터 미국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지난해 11월 뉴욕에서 있었던 콘퍼런스의 패널 토론에서 한 이야기다. 

    첫째, 금융 규제는 금융 전체 시스템이 처할 수 있는 위험에 맞춰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금융 시스템이 위험에 대한 탄력성을 가질 수 있다. 탄력성을 갖는다는 것은 금융 시스템이 어려운 상황에 빠진 상태에서도 본연의 역할을 지속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드-프랭크(Dodd-Frank) 법안을 통과시켰다. 금융위기 이전 미국 은행의 자본금은 너무 적었고 게다가 이 자산들은 유동성이 낮거나 위험도가 높은 것들로 구성돼 있었다. 금융 소비자들은 가치가 제대로 측정되지 않은 담보로 쉽게 돈을 빌렸다. 이 법안은 다시 위기가 왔을 때 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메스터 총재는 아기를 목욕시킨 후 목욕물만 버려야지 아기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는 비유를 쓰면서 금융 규제는 금융 시스템의 탄력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금융 시스템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이노베이션을 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둘째, 금융 규제는 시장의 힘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규제 초점이 금융기업과 소비자에게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방법에 모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인센티브가 없다면 아무리 신중하게 만든 규제라도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된다. 예를 들어 규제가 없는 섹터나 장소로 움직이는 것이다. 또는 돈을 빌려야 하는 금융 소비자가 돈을 못 빌리게 된다거나, 규제를 만족시키기 위해 금융기관이 너무 많은 비용을 쓰게 돼 기업으로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공약 가운데 하나였던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의 첫걸음을 뗐다. 5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은 금융위기 이후 2010년에 만들어진 도드-프랭크법의 일부 규제를 없애는 법안에 서명했다. 현재 이 법의 많은 부분은 규모가 비교적 작은 금융기관들에 대한 규제다. 이번 규제 폐지로 비용 절감은 물론, 규제당국에 대한 보고 간소화 등의 혜택이 예상된다. 당연히 이들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 

    최종 확정되지 않았지만, 계속 금융 규제 완화가 있을 예정이다. 특히 앞으로 규제 완화는 미국 내 대형 글로벌 금융기관에도 적용되는 것이 많다. 이 규제 완화와 변화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궤를 같이한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생긴 많은 규제를 바꾸는 것이다.

    금융 감독기관의 신뢰

    2월 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본관에서 열린 재닛 옐런 의장 송별 행사에서 제롬 파월 신임 의장(왼쪽)이 옐런 의장의 스타일을 따라 옷깃을 세운 채 연설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미국 연방준비제도]

    2월 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본관에서 열린 재닛 옐런 의장 송별 행사에서 제롬 파월 신임 의장(왼쪽)이 옐런 의장의 스타일을 따라 옷깃을 세운 채 연설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미국 연방준비제도]

    셋째, 규제는 금융기관, 금융 소비자, 그리고 금융 규제당국이 각자 주어진 책임을 다한다는 믿음을 서로 갖게 만드는 방향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금융당국이 정해진 룰에 따라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확한 규정이 없다고 임의로 만들어 시행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금융기관과 금융 소비자는 무슨 일이 발생해도 어떤 규제와 결과가 있으리라고 예측이 가능하다. 여론을 이유로 갑자기 조사하고 손바닥 뒤집듯 결과를 반대로 발표해서는 안 된다. 또 금융기업과 기관에 압박을 주는 권유를 해서도 안 된다. 제재나 징계가 아닌 언급과 권유 역시 금융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금융 규제기관이 참견할 일과 아닌 일에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금융 규제기관이 여론에 떼밀려 참견하게 되면 당장 목청을 돋우는 사람들을 조용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금융 감독기관과 금융 시스템 전체에 대한 불신이 쌓인다. 

    특히 세 번째 규제 원칙은 변화하는 기술을 금융에 접목하려는 신사업, 그리고 새로운 기업이 많이 생기는 현 시점에 더욱더 중요하다. 핀테크 같은 새로운 영역에서는 기존 규제로 처리할 수 없는 일이 많다. 그렇다고 규제당국이 임의로 결정해 규제에 나서는 것은 한국 금융계를 넘어 경제 전체를 죽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영주 닐슨
    •전 헤지펀드 퀀타비움캐피탈 최고투자책임자
    •전 Citi 뉴욕 본사 G10 시스템트레이딩헤드
    •전 J.P.Morgan 뉴욕 본사 채권시스템트레이딩헤드
    •전 Barclays Global Investors 채권 리서치 오피서
    •전 Allianz Dresdner Asset Management 헤지펀드 리서치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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