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7

2018.05.09

국제

만탑산의 불편한 진실

北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입구만 막은 것은 일종의 쇼  …  붕괴될 경우 핵 오염으로 대재앙

  • 입력2018-05-08 14: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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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이 있는 만탑산 정상 일대를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사진. [구글 어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이 있는 만탑산 정상 일대를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사진. [구글 어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이 있는 만탑산은 해발 2205m나 되는 고봉이다. 산 곳곳에 솟은 바위들을 멀리서 보면 무수히 많이 세워진 탑 같아 만탑산(萬塔山)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만탑산은 기운봉(1874m), 학무산(1642m) 등 해발 1000m 이상 준령(峻嶺)으로 둘러싸여 있다. 특히 만탑산은 단단한 화강암 재질의 암반으로 이뤄져 있어 핵실험장으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만탑산은 파키스탄 핵실험장인 라스코산과 비슷하다. 라스코산도 화강암으로 이뤄졌고 해발 3000m나 된다. 파키스탄은 1998년 5월 이곳에 터널을 여러 개 뚫고 다양한 종류의 핵폭탄 5개를 한꺼번에 터뜨리는 실험을 했다.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북한과 파키스탄은 핵실험 장소뿐 아니라 방사능 계측기와 통신장비가 설치된 벙커, 부속건물 배치, 진입로 위치 등이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강력하게 부인하지만 라스코산 일대는 방사능이 누출되면서 심각한 환경오염이 발생해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됐다. 파키스탄 정부가 라스코산 일대를 출입 금지 지역으로 지정해놓아 환경오염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4개의 지하갱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가진 남북정상회담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5월 중 폐쇄하겠다”며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들을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위원장이 이런 카드를 꺼내 든 것은 미국에 비핵화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검증까지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인 것으로 판단된다. 만탑산에는 동서남북에 4개의 지하갱도가 있다. 동쪽 갱도에서 실시된 1차 핵실험을 제외한 나머지 5차례 핵실험은 모두 북쪽 갱도에서 있었다. 북한은 6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폭탄의 폭발력을 끌어올렸다. 1차 핵실험(2006년 10월 9일)의 위력은 1kt 이하로 평가됐지만 2차(2009년 6월 12일) 3∼4kt, 3차(2013년 2월 12일) 6∼7kt, 4차(2016년 1월 6일) 6kt, 5차(2016년 9월 9일) 10kt 등으로 커졌다. 특히 지난해 9월 3일 실시한 6차 핵실험에선 수소폭탄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에 따르면 당시 북한의 6차 핵실험은 규모 6.1로, 폭발력으로 환산하면 최대 250㏏에 달한다. 이 정도 규모면 수소폭탄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일부에선 못 쓰게 된 핵실험장을 폐쇄하는 거라고 하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실험시설보다 큰 2개의 갱도가 더 있고 아주 건재하다”고 밝히면서 ‘통 큰’ 결정이라고 생색까지 냈다. 김 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과연 어느 정도 진실에 가까울까. 한미 정보당국은 동쪽(1번) 갱도는 1차 핵실험으로 이미 무너졌고 북쪽(2번) 갱도도 2∼6차 핵실험을 거치면서 사용 불능 상태지만, 남쪽(3번)과 서쪽(4번) 갱도는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도 ‘6차 핵실험 이후 북쪽 갱도는 버려졌지만 그 대신 굴착공사를 진행해온 서쪽과 남쪽 갱도에서는 앞으로도 핵실험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일부 학자는 핵실험장을 계속 사용할 경우 만탑산이 붕괴될 수도 있다고 본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4월 25일 지질학자인 원롄싱 중국과학기술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의 보고서를 인용해 ‘지하 700m에서 실시된 6차 핵실험으로 풍계리 핵실험장의 북쪽 갱도가 붕괴됐다’고 보도했다. 이 연구팀은 ‘2000여 곳의 지진 관측소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핵실험 당시 지하 암반이 기화했고 주변에 직경 200m의 공간이 생겼다’면서 ‘위성사진에서도 폭발 이후 암석들이 무너지며 정상으로부터 0.5km 떨어진 곳에 구멍이 뚫린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원롄싱 교수는 “붕괴로 방사능물질의 누출 가능성을 계속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의 보고서는 과학저널 ‘지구물리학연구지’ 웹사이트에 게재될 예정이다. 



    중국 지린성 지진연구소 연구팀도 3월 같은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북한의 핵실험 현장에서 암석 붕괴가 처음으로 발견됐다’며 ‘만탑산 정상 일부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지하의 폭발 장소에서부터 낙진 등 방사능물질이 솟아오를 수 있는 ‘굴뚝’과 유사한 지형이 형성됐다’고 밝혔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도 4월 26일자에서 ‘미국 과학자들이 중국 연구팀들의 연구 결과가 상당히 타당성이 있다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6차례 핵실험 여파는 엄청났다. 만탑산의 암석이 깨지고 산사태까지 발생했다. 또 정상이 4m 정도 내려앉았다는 관측도 나왔다. 외국 지질·지진학자들은 만탑산이 ‘산 피로증후군(tired mountain syndrome)’을 겪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산 피로증후군은 냉전시대 핵실험장으로 사용했던 곳의 암석과 지반이 핵실험 여파로 크게 약해져 대규모 산사태나 지반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을 말한다. 지진학자인 폴 리처즈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핵폭발이 북한의 지구조 응력(지층의 힘)을 뒤흔들어놓았다”고 지적했다. 리처즈 교수는 “옛 소련이 핵 실험을 실시했을 때도 지하 암반이 엄청난 충격을 받아 붕괴되면서 지진이 발생했다”며 “만탑산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산 피로증후군 우려

    북한은 2008년 평안북도 영변의 5MW 규모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다. [동아DB]

    북한은 2008년 평안북도 영변의 5MW 규모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다. [동아DB]

    북한에선 6차 핵실험 이후 지금까지 모두 11차례 지진이 발생했다. 4월 23일 함경북도 길주군 북북서 47km 지점에서 발생한 규모 2.3 지진이 11번째다. 지진이 발생한 지점은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북동쪽으로 5km 떨어진 곳이다. 계속되는 지진은 핵실험 여파로 갱도가 붕괴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문제는 북쪽 갱도 전체가 완전히 붕괴될경우 갱도에 있던 방사능물질이 외부에 누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자칫하면 대재앙이 벌어질 수도 있다. 옛 소련 최대 핵실험장이던 카자흐스탄 세미팔라틴스크에선 대규모 핵실험으로 현지 주민들이 피폭돼 지금까지 고통받고 있다. 당시 소련은 1961년부터 89년까지 세미팔라틴스크 지역에서 수백m의 지하 동굴을 뚫고 348개 핵폭탄을 실험했다. 소련 붕괴 이후 독립한 카자흐스탄 정부는 이 지역을 폐쇄했지만 사망자를 비롯해 60만여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방사능에 피폭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서도 풍계리 인근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귀신병’을 앓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핵물리학자인 궈추쥐 중국 베이징대 교수는 “방사능물질이 이미 산에 뚫린 구멍이나 굴뚝을 통해 빠져나갔다면 바람을 타고 중국 쪽으로 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경고는 북한은 물론 한국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이 때문에 만탑산 갱도 입구를 콘크리트로 막는 정도의 폐쇄는 충분하지 않다. 핵 오염을 막으려면 만탑산 전체는 물론, 인근 지역에 대한 정밀 조사와 함께 붕괴된 곳에 콘크리트를 투입하는 등 대규모 공사가 필요하다. 북한은 2008년에도 ‘핵 불능화’ 조치를 취하겠다며 한미 언론을 초청해 평안북도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장면을 공개했지만 이후 ‘위장 쇼’인 것으로 드러났다.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는 “북한의 핵실험장 폐쇄 결정은 쇼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북한은 후세를 위해서라도 만탑산 붕괴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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