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5

2018.04.25

풋볼 인사이트

김민재, ‘국대’ 넘어 프리미어리그 갈 재목

학창 시절부터 프로 데뷔까지 헛발질 없던 수비수

  • 입력2018-04-24 13: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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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현대모터스 수비수 김민재. [동아일보]

    전북현대모터스 수비수 김민재. [동아일보]

    3월 24일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북아일랜드 대표팀의 경기. 아니나 다를까 수비진이 삐걱댔다. 최후방을 담당한 김민재(전북현대모터스)도 풀이 죽어 있었다. 부상 이후 복귀해 대표팀에서 차근차근 발을 맞춰왔지만, 상대 공격수를 완벽히 봉쇄하지 못했다. 설상가상 자책골까지 범해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경기 직후 모바일 메신저로 건넨 위로에 돌아온 답은 “네...” 평소 말을 곧잘 하던 성격이라 더욱 짤막하게 느껴졌다. 점 3개에 의기소침한 속내가 묻어났다. 

    김민재는 ‘자이언트 베이비’란 별명을 얻은 대형 신인이었다. 지난해 프로무대를 밟은 뒤 바로 ‘K리그 2017 대상’에서 영플레이어상을 거머쥐었다. 데뷔 3년 차 이하로 일정 경기 수를 채운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공격 포인트 등이 돋보이는 후보가 있었지만 중앙 수비수로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1996년생으로 만 스물한 살인 이 청년은 성인 축구를 시작한 지 1년 반 만에 월드컵을 겨냥한다. 폴란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등 세계적인 공격수와 격돌하며 성장통을 겪기도 했으나, 경험치를 쌓기에 이만한 기회도 없다. 머잖아 축구 선진지 유럽으로도 날아갈 만한 인물이다.

    항상 빛났던 유망주

    “수원공고에 물건이 하나 있다.” 

    김민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계기다. 광활한 아마축구 현장에서 진주를 캐는 관계자들은 으레 그를 추천해왔다. 현재 한국 고교 축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K리그 팀 산하 유스팀과 일반 학교 축구팀. 전자가 수원삼성 U-18 매탄고, 울산현대 U-18 현대고라면 후자는 보인고, 영등포공고, 수원공고 등이다. 후자가 오랜 시간 아성을 지켜왔지만 최근에는 육성 시스템에 본격적인 투자를 진행한 전자 쪽으로 분위기가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후자에도 선수의 땀에 코칭스태프의 지도력이 더해져 송곳처럼 뚫고 나오는 재목이 꼭 존재한다. 수원공고 중앙 수비수 김민재가 그랬다. 

    소속팀에서 인정받은 이들에겐 대표팀이라는 더 큰 동기가 주어진다. 내로라하는 이들만 선발해 한 팀을 꾸린다. 김민재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을 준비하던 시기다. 2015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까지 나아갈 수 있는, 비중이 큰 팀이었다. 다만 그 연이 끝까지 닿지 않았다. 김민재는 한 살 많은 형들에게 자리를 내주며 U-19 챔피언십 최종 명단 승선에 실패했다. 당시 팀을 이끌던 김상호 감독은 김민재의 능력을 높이 사면서도 두 가지 아쉬움을 전했다. 하나는 불안정한 빌드업이고, 다른 하나는 불확실한 수비 타이밍이었다. 



    절치부심한 김민재는 2015년 연세대 신입생이 된다. 고교 시절 주장으로 전국 왕중왕전 우승을 이끄는 등 실력을 발휘한 덕분이었다. 결승에서 포항스틸러스 U-18 포항제철고를 꺾어 더욱 화제가 됐다. 김민재가 입학한 뒤 연세대는 축구 천하를 호령하기 시작했다. 최근 대학 축구는 춘추전국시대지만 그 와중에도 2015년 연세대는 막강했다. 최근 맨체스터 시티 FC가 리그 종료 5경기 전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우승을 따낸 것처럼 압도적이었다. 이근호(강원FC)가 최전방에서 득점을 노리고, 한승규(울산현대축구단), 황기욱(AFC 투비즈)이 중원을 조율했다. 그러면 김민재가 최준기(성남FC)와 함께 골문을 틀어막아 승리의 마침표를 찍었다. 김민재는 190cm 가까운 육중한 피지컬을 영리하게 잘 활용했다. 키 큰 선수들의 치명적 단점인 스피드도 준수한 편이었다. 통통 튀는 탄력으로 상대 공격수를 제압했다. 

    김민재의 다음 행선지는 일찌감치 이슈가 됐다. 어느 프로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느냐는 것. 경상도 소재 모클럽이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전북이 먼저 사인을 받아냈다. K리그 최강팀 전북. 전·현직 국가대표가 아니라면 경기 출전도 어려운 구단이다. ‘신인의 무덤’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김민재는 연세대 2학년 때 자퇴하고 전북팀 숙소에서 훈련을 함께 하며 K리그에 대비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단기 계약을 맺어 내셔널리그를 잠깐 경험하기도 했다. 이듬해 전북은 김민재를 주전 수비수로 내세웠다. 경험과 호흡이 중요한 최후방은 보통 모험을 걸지 않는 것이 관례. 신인 김민재의 등장만으로도 K리그는 술렁였다. 출전을 거듭하더니 팀 핵심으로까지 올라섰다. 2014년 전북 신인 이재성이 그랬듯 신선하고 강렬했다.

    첫 수비수 출신 프리미어리거 될 수도

    김민재(전북현대모터스)가 ‘K리그 2017 대상’에서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다. [동아일보]

    김민재(전북현대모터스)가 ‘K리그 2017 대상’에서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다. [동아일보]

    개인적으로는 김민재의 제1 성공 비결로 뱃심을 꼽는다. 고3 때만 해도 또래 가운데 최고 수비수라고 치켜세우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외부 평가에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일에 충실했다. 연세대 신입생으로 경기를 뛰며 자신감이 붙자 여유까지 따라왔다. 김민재가 성인 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건 2018 러시아월드컵행이 간당간당한 때였다. 지난해 8월 말 이란전. 패한다면 자칫 월드컵 진출이 무산될 수 있었다. 후폭풍을 안고 싸우는 중압감은 대단했다. 신태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이날 김민재를 선발로 세우는 파격을 택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너무도 태연하게 경기를 풀어간 김민재가 신통방통해 물어봤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느냐”고. 담담한 목소리로 “떨리는 건 딱히 없었어요. 하던 대로 했죠”란다. “대표팀 첫 경기 때는 공도 잘 안 보이더라”던 다른 선수와는 판이했다. 영플레이어상 수상 뒤 단상에서 쏟아낸 말도 흥미로웠다. “요즘 축구 열기가 많이 떨어졌다고 하는데요. 야구나 농구로 넘어가신 팬분들이 K리그로 다시 올 수 있게끔 저부터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는 물론, 각 팀 감독이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더욱이 생방송으로 진행된 무대에서 뱃심 좋은 김민재가 아니라면 감히 하기 어려웠을 발언이다. 

    전북이란 팀과 호흡도 괜찮았다. 개개인 실력이 빼어나다 보니 일단 출전만 하면 동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요령이 생기면서 급하게 뻥 차는 대신 안정된 패스로 공격 첫 단추를 끼웠다. 상대 공격수에게 지나치게 달라붙는 동작이 나오기도 하지만, 맹렬히 다가설 때와 차분히 기다릴 때를 가려내는 수비수 덕목도 서서히 갖춰나갔다. 무리한 파울을 줄이기 위한 필수 과정을 거친 셈이다. 

    김민재가 밟을 다음 스텝은 러시아월드컵과 유럽 빅리그다. 더 여물어야 할 구석이 있다지만, 지금처럼만 한다면 시간이 해결해줄 터다. 그간 유럽에서 대성한 한국 국적의 중앙 수비수는 사실상 없었다. 피지컬과 속도, 그리고 배짱까지 두둑한 김민재라면 한번 기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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