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5

2018.02.07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미세먼지, 정말 중국 때문인가

중국 탓하기 전 차량 2부제 등 ‘사회 실험’ 해보자

  • 입력2018-02-06 15: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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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진
1월 17일 서울 잠실 일대 모습. [동아일보]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진 1월 17일 서울 잠실 일대 모습. [동아일보]

    1년 가까이 ‘주간동아’에 칼럼을 쓰면서 다행히 큰 욕을 먹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씩 “어느 나라 기자냐” “중국으로부터 돈 받았느냐”는 항의를 받는다. 처음 쓴 글(1080호 ‘미세먼지 누가 중국 탓을 하는가?’) 때문이다. 나름대로 오랫동안 공부하고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인데…. 

    미세먼지로 전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만큼 항의가 이어질 각오를 하고 다시 한번 부연을 해야겠다. 덧붙이자면, 앞의 글을 쓰고서 주한 중국대사관으로부터 전화 한 통도 받지 못했다. 애초 그 글이 중국에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닐뿐더러, 그들은 우리나라 공기 질에 티끌만큼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중국 욕해도 달라질 게 없다

    중국에서 먼지가 날아온다는 발상은 익숙하다. 삼국시대(174년) 신라의 기록에 하늘에서 ‘우토(雨土)’가 내렸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로 황사 현상은 오래된 것이다. 황사는 한반도에서 약 2000km(고비사막)나 5000km(타클라마칸사막) 떨어진 곳에서 상승 기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모래 먼지가 이동한 것이다. 그런데 황사와 미세먼지는 태생부터 다르다. 

    지금 문제가 되는 미세먼지(PM2.5)는 화력발전소나 공장 굴뚝, 자동차 꽁무니에서 나오는, 크기가 2.51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 분의 1m)보다 작은 먼지다. 지름이 머리카락 굵기의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렇게 작다 보니 호흡할 때마다 코털, 점액 등에서 걸러지지 않고 몸속 깊이 들어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이 미세먼지는 어디서 온 것일까. 요즘에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중국 욕부터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럴 만하다.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미세먼지의 ‘국외(중국) 영향이 평소에는 30~50%, 고농도 시에는 60~80%’(2016년 6월 24일)라는 것이다. 많은 언론이 이런 정부 입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사실(fact)’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만약 이런 주장이 진실이라면 큰일이다.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속도가 둔해지긴 했지만, 중국의 공장이나 발전소가 늘면 늘지 줄지는 않을 것이다. 자동차 수도 계속해서 증가할 터다. 그렇다면 우리는 숨쉬기도 곤란한 특수 마스크를 사시사철 착용하고 다니면서 아프지 않기만을 바라야 한다. 

    정부를 상대로 중국에 할 말은 하라며 다그쳐보자고? 만약 일본이 한국의 미세먼지 때문에 못 살겠으니 공장 가동을 멈추고 자동차를 줄이라 요구한다면 우리는 받아들일까. 중국과 한국의 국력 차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이런 요구에는 한계가 있다. 즉 미세먼지가 중국 탓이라고 하면 당장 속은 시원하지만 정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을 가장 즐기는 이들이 한국 정부와 기업이다. 공기청정기에서부터 특수 마스크까지 미세먼지 특수를 누리는 기업은 더러워진 공기 탓에 기대하지 않은 이윤이 생기니 좋다. 결국 병들어가는 것은 우리와 다음 세대뿐이다. 

    그런데 정말 미세먼지는 온전히 중국 탓일까. 욕부터 하지 말고 하나씩 찬찬히 따져보자.

    맑은 공기를 되찾는 거대한 ‘사회 실험’

    1월 17일 서울시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서울 대중교통 무료 운행을 시행했다. [동아일보]

    1월 17일 서울시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서울 대중교통 무료 운행을 시행했다. [동아일보]

    먼저 위에서 언급한 정부 발표를 뒤집어 생각해보자. ‘국외(중국) 영향이 평소에는 30~50%, 고농도 시에는 60~80%’라는 얘기는 다시 말하면 ‘국내 영향이 평소에는 50~70%, 고농도 시에는 20~40%’라는 지적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소한 20%가량은 국내에서 발생한 미세먼지가 문제다. 

    이런 해석은 여러 정황이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가 극심했던 지난해 4월 3일 한 방송사(SBS)는 서울 도심 미세먼지 농도가 약 60㎍이고, 공장 굴뚝이나 자동차 한 대 없는 서해 상공의 미세먼지 농도는 30㎍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 내용대로 서해 상공의 미세먼지가 모조리 편서풍을 타고 중국으로부터 날아온 것이라고 가정하자. 

    그럼 서울 도심과 서해 상공의 미세먼지 농도 차이(60-30=30㎍)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시야가 흐릴 정도로 미세먼지가 심한 봄날에도 최소한 미세먼지의 절반(30㎍)가량은 편서풍을 타고 중국으로부터 날아온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해석해야 맞다. 만약 그 절반만큼을 줄이는 데 성공한다면, 아쉬운 대로 좀 더 나은 공기를 마시는 일이 가능하리라. 

    심지어 서해 미세먼지도 중국으로부터 날아온 것이 아닐 수 있다. 중국 베이징이나 산둥반도의 칭다오 같은 도시가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맑은 날이 계속되는데도 한국의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경우가 있다. 심지어 이때 서해 상공에서 상당히 높은 농도의 미세먼지가 측정되기도 한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일까. 바로 종잡을 수 없는 대기 흐름에 답이 있다. 

    대한민국 대기의 큰 흐름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편서풍이다. 하지만 한반도 안에는 편서풍 외에도 수많은 대기 흐름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한다. 중국에서 한반도 쪽으로 부는 편서풍이 지배적일 때도 있지만, 보통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종횡무진 대기 흐름이 바뀐다. 

    과학자 다수가 공장 굴뚝이나 자동차 한 대 없는 서해 상공, 남해나 강원도 청정지역의 미세먼지가 중국으로부터 날아온 것이라고 단정 짓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때로는 충남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나온 미세먼지가 북쪽으로 확산하면서 수도권뿐 아니라 서해 상공이나 강원도로 갈 수도 있다. 수도권 미세먼지가 서쪽(서해 상공)이나 동쪽(강원도)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며칠간 북극지역의 찬 공기가 강한 북서풍을 타고 한반도를 덮쳤을 때는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이 계속됐다. 왜냐하면 바람이 세서 미세먼지 같은 오염물질이 특정 지역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기 정체로 발전소 굴뚝에서 나온 미세먼지가 서울 도심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자동차 배기가스 같은 오염물질까지 겹치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대부분 이런 상황이다. 

    마침 박원순 서울시장이 미세먼지가 심할 때 차량 2부제를 강제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나는 이런 정책을 일종의 ‘사회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눈 딱 감고 몇 번 불편해보자. 도로 위 자동차가 반으로 줄었는데도 미세먼지 농도에 별반 차이가 없다면 정말 중국산 미세먼지가 원흉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효과가 있다면 우리 힘으로 맑은 공기를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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