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7

2017.12.13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세계 어디서나 친구를 만들어주는 음악의 힘

베트남 후에에서 만난 ‘펑크 키드’

  • 입력2017-12-12 10: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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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다낭에서 차로 2시간가량 가면 후에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베트남 왕조의 마지막 수도로 우리로 치면 경북 경주시에 해당한다. 그러나 아직 개발이 덜 된 곳이라 베트남 수도 하노이나 최대 도시 호찌민 등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신흥 관광지인 다낭에 비해서도 한참 낙후됐다. 외국인들을 위한 가게가 즐비한 거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도로가 움푹움푹 파여 있기 일쑤다. 

    ‘미식의 도시’라는 지인의 한마디에 낚여 다낭에서 후에로 향했다. 이미 다낭에서부터 시작한 음식여행이었기에 슬슬 질리기 시작했다. 배낭여행자를 위한 ‘트립어드바이저’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코코클럽’ 식당이 가장 높은 순위에 올라 있었다. 메뉴도 다양했다. 프렌치와 이탈리아 스타일의 음식에서부터 스테이크, 햄버거까지. 동남아 식당이 대체로 메뉴가 많긴 하지만 여긴 국적 또한 화려해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래도 이유 없는 추천은 없는 법. 걸어서 그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밤길을,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무리를 피해가며 걷고 또 걸었다. 어두운 골목을 뚫고 나가니 그 동네에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주택이 빛을 뿜고 있는 게 보였다. 풀까지 갖춘, 일종의 작은 리조트였다. 

    진정한 맛집은 숨어 있다더니 여기가 바로 그런 곳인가 싶었다. 이런저런 프랑스 요리를 시켰다. 그런데 왠지 익숙한 맛이었다. 그러니까 1990년대 대학로 ‘마르세유’ 같은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던 그런 맛. 실망하며 다음에 어디로 갈지 동행과 논의하고 있을 때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는 엄청난 친화력을 발휘하더니 테킬라 한 병과 라임 한 바구니를 내왔다. 

    그리고 우리는 꽤나 괜찮았던 이 레스토랑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코코클럽은 관광객을 위해 싸구려 일렉트로닉 음악을 트는 여느 식당과 달랐다. 알고 보니 모로코에서 태어나 몇 년 전부터 후에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그 남자는 과거 열혈 펑크 키드였다. 나 또한 20대의 꽤 오랜 시간을 펑크 신에 몸담았기에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아무도 없는 밝은 홀에서 더 후, 클래시, 섹스 피스톨스 같은 음악을 틀어놓고 우리는 신나게 춤을 췄다. 그는 연신 테킬라를 퍼줬고, 우리가 동갑임을 알고 난 뒤엔 심지어 한 병을 더 꺼내 왔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음악을 좋아하는 덕에 어느 도시를 가든 쉽게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대부분 그 도시의 유명한 음악 술집에서였다. 관광객이라곤 없는 가게에 혼자 앉아 있는 동양 남자는 관심의 대상이었고, 그 도시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동양 남자 콤플렉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기 일쑤였다. 



    한국인, 특히 한국 남자는 혼자 해외여행을 하는 일이 드물다. 혼자 가더라도 대부분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며 명승지만 찍고 온다. 현지인과 대화할 거리가 없어서, 친구를 만들 자신이 없어서다. 꼭 음악이 아니라도 좋다. 취미, 그 이상의 문화적 관심사만 있다면 어느 곳에 가나 이를 공유하는 친구를 만들 수 있다. 적잖은 해외여행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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