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6

2017.12.06

김민경의 미식세계

둘러앉아 나눠 먹는 ‘빅 푸드’

우리만의 ‘빅 나이트’를 준비하자!

  • 입력2017-12-05 13:4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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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를 촉촉하게 익혀야 제맛인 비프 웰링턴.[위키피디아]

    고기를 촉촉하게 익혀야 제맛인 비프 웰링턴.[위키피디아]

    12월이 가까워 오니 이런저런 모임에서 송년회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집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워낙 잦은 편이지만, 연말 모임만큼은 내 손으로 차린 음식을 나눠 먹고 싶은 마음이 유난히 든다. 그러다 보니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각자 음식을 한두 가지씩 만들어 모이는 자리가 연말에 종종 생긴다. 

    푸짐한 음식과 술, 그보다 더 풍성한 이야기가 무르익는 모습을 한 발 뒤에서 보고 있자면 영화 ‘빅 나이트’(1996)가 떠오른다. 오감을 자극하는 훌륭한 음식 영화는 많지만, ‘빅 나이트’는 미식의 배경에 사람과 그 관계에서 우러나는 따뜻함을 담고 있다. 영화 속 음식을 보고 있자면 단순히 맛있겠다가 아니라, 같이 먹고 싶은 누군가가 꼭 떠오른다. 영화에 나오는 이탈리아 요리 ‘팀발로(timballo)’는 미련해 보일 만큼 푸짐하다. 멋짐이나 화려함은 빼고 오로지 많이, 크게 만들어 여럿이 나눠 먹고자 하는 의지가 뚜렷하다. 주로 마카로니 같은 쇼트 파스타나 쌀, 감자 같은 탄수화물 재료에 고기, 해산물, 가금류, 채소, 치즈, 소스와 허브를 넣고 버무린다. 이것을 소로 활용해 파스타 반죽, 페이스트리 반죽, 얇고 넓게 썬 가지 등으로 감싸 오븐에 굽는다. 큰 그라탱 용기에 소를 가득 채우고 그대로 오븐에 구워 완성하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지역마다, 집집마다 팀발로의 소와 피를 만드는 방법이 다르지만 특별한 모임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인 것만은 변함없다.

    비프 웰링턴(beef wellington)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크리스마스캐럴을 흥얼거리고 싶어진다. 오븐에서 갓 꺼낸 비프 웰링턴의 크고 먹음직스러운 모양과 향은 언제나 탄성을 동반한다. 한 뼘 정도 되는 소 안심을 통째로 준비해 소금, 후추, 허브를 골고루 뿌려 간한다. 버섯, 양파, 마늘, 허브 등을 곱게 간 뒤 팬에 볶아 수분을 날리고 소금, 후추로 간해 뒥셀(duxelles)을 만든다. 뒥셀은 본래 거위나 닭의 간, 샬롯을 넣어 만드는데 좋은 버섯만으로도 훌륭한 풍미를 낼 수 있다. 밑간한 소 안심은 뜨겁게 달군 기름에 굴리며 겉면만 굽는다. 페이스트리 반죽 위에 뒥셀을 넓게 펼치고 소 안심을 올려 김밥처럼 돌돌 말아 양 끝을 여민 뒤 오븐에 넣어 굽는다. 빵처럼 노릇하게 구운 비프 웰링턴을 도톰하게 썰면 핑크빛 고기에서 육즙이 조르르 흘러나온다. 식감, 풍미가 주는 즐거움과 풍성함으로 여러 사람이 즐겁게 나눠 먹기 딱 좋은 음식이다.


    작은북처럼 크게 만든 팀발로(오른쪽)와 부드러운 고기 요리 미트로프.[위키피디아]

    작은북처럼 크게 만든 팀발로(오른쪽)와 부드러운 고기 요리 미트로프.[위키피디아]


    미트로프는 ‘초딩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모임 음식이다. 거대한 미트볼 같은 맛과 모양 때문이다. 다진 고기에 셀러리, 양파, 당근을 잘게 썰어 넣고 취향에 맞는 소스를 살짝 넣어 간한다. 마지막으로 빵가루와 달걀을 넣고 버무려 식빵처럼 커다란 고기 반죽을 만든다. 이를 그라탱 용기에 담고 글레이즈를 여러 번 발라가며 오븐에 구워 완성한다. 글레이즈는 토마토케첩, 우스터소스, 머스터드, 꿀 등을 섞어 만드는데 이 맛이 고기에 촉촉하게 밴다. 완성된 미트로프는 매시드 포테이토와 곁들이거나 빵에 끼워 먹으면 맛있다. 음식을 만들 때는 먹을 일을 생각하면 절로 흥이 난다. 푸짐한 음식일수록 여럿이 나눠 먹을 수 있고 여럿이 모일수록 이야기와 시간은 촘촘하게 메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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