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6

2017.12.06

인터뷰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김국영“100m 48걸음에 뛰겠다”

10초 벽 뚫기 위해 49걸음에서 한 걸음 줄이기 피나는 훈련 중

  • 입력2017-12-05 16: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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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라는 제목을 보고 과장이라 여길 수 있다. 현재 남자 육상 100m 세계 기록은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가 세운 9초58이다. 올해 8월 런던세계육상선수권대회(런던대회) 같은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미국 저스틴 개틀린은 9초92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한국 1등’ 김국영 선수(26  ·  광주시청·사진)의 100m 최고 기록 10초07은 이에 적잖이 뒤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범위를 다소 좁히면 얘기가 달라진다. 김국영은 런던대회 예선에서 출발 반응 속도 0.107초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이후 레이스 중반부까지 그보다 앞선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김국영과 같은 조에서 달린 세계 챔피언 개틀린을 포함해서다. 총성과 동시에 스타팅 블록을 박차고 나가는 김국영의 탄력에는, 우리를 오랫동안 짓눌렀던 콤플렉스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경쾌함이 있었다.

    한국 육상의 새로운 역사

    김국영은 한국 육상 선수 중 사상 최초로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 종목에 자력 진출한 인물이다. 이 대회 예선을 통과해 준결승 트랙에 선 한국 선수도 지금까지 그밖에 없다. 그런 그가 ‘동양인은 안돼’라는 오랜 편견을 깨고 ‘세계 최고’ 반응 속도까지 기록했다. 

    “런던대회 예선을 보고 ‘한국 사람도 육상을 잘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100m 종목에서 우리 선수가 개틀린을 앞질러 달려가는 걸 보니 신기하더군요.”

    기자의 첫 인사에 김국영은 쑥스러운 듯 웃기만 했다. 반면 김국영을 지도해온 심재용 광주시청 육상팀 감독(58·대한육상연맹 부회장)은 “국영이가 스타트에서 최고인 건 뭐 다 아는 얘기니까…”라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날은 개틀린까지 앞서고 보니 자기도 ‘되겠다’ 싶었나 봐요. 너무 힘을 쓰다 그만 허리를 삐끗했죠.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었는데 그게 좀 아쉬워요. 그런 경험을 하면서 점점 더 성장해가는 거죠.”

    심 감독의 목소리에서 제자에 대한 진한 애정이 느껴졌다. 그렇다. 김국영은 지금까지 성취보다 앞날이 더 기대되는 선수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한국 육상에도 비로소 미래가 생겼다. 돌아보면 2010년 김국영이 열아홉 나이로 남자 100m 한국 기록(10초23)을 세운 때부터 그랬다. 

    그전까지 한국 육상 100m 기록은 31년간 10초34에 머물러 있었다. 1979년 고(故) 서말구 선수가 세운 기록에서 100분의 1초도 줄지 않았다. ‘한국인은 신체조건상 여기까지밖에 안 되나 보다’라는 자조가 깊어질 무렵 김국영이 이 ‘한계’를 돌파해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세운 기록을 계속 스스로 깨나가며 한국 육상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최근에는 더욱 스퍼트를 올리는 모양새다. 6월 열린 2017 코리아오픈 국제육상경기대회에서 10초07로 한국인 최초 ‘10초0대’ 기록을 세우더니 10월 전국체육대회에서는 10초03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10초03이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공식 기록은 아니다. 경기 당시 뒷바람이 초속 3.4m로 불어서다. IAAF는 뒷바람이 초속 2m 이상일 때 나온 기록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심 감독은 “보통은 뒷바람이 잘 불어주면 레이스에 유리하다. 그런데 그날은 바람이 워낙 강해 오히려 국영이가 중심을 잃고 살짝 흔들렸다. 바람 없이도 충분히 10초03, 10초04에 뛸 만한 컨디션이었는데, 그날은 바람 때문에 손해 본 셈”이라고 전했다.

    한계를 돌파하는 순수한 기쁨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이날 경기 이후 한국 육상계에서 김국영에게 거는 기대가 더욱 커졌다. 지금 같은 발전 속도라면 머잖아 그가 한국 선수 최초로 100m를 9초대에 주파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 섞인 전망도 나온다. ‘10초 벽’을 깨는 것은 김국영이 육상을 시작한 뒤 줄곧 마음에 품어온 꿈이기도 하다. 

    “훈련할 때나 쉴 때나 달리기 생각만 해요. 가끔 제가 기계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게 좋아요. 열심히 운동한 뒤 제 몸의 변화를 느끼는 것도 좋고요. 몸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거든요. 한동안은 저 자신도 뭐가 달라지는지 몰라요. 그래도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 내 몸이 전보다 좀 더 좋아졌구나’ 느낌이 오죠. 그럴 때 정말 짜릿해요.”

    그 기쁨이 다시 고된 훈련을 버텨내는 힘이 된단다. 스물여섯 청년의 덤덤한 말에 왠지 마음이 뭉클해졌다.
    김국영이 육상을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다. 운동선수치고 이르지 않은 나이다.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눈에 띄게 잘하긴 했다고 한다. 동네 축구를 할 때 그가 공을 잡으면 아무도 따라오지 못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워낙 잘 뛰어 학교 대표로 외부 대회에 출전한 일도 있다. 연습 한 번 안 해도 달리기상은 모두 다 휩쓸던 시절이다. 주위에서 ‘운동선수를 해보라’고 권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부모가 반대했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 뒤를 따르기를 바랐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들은 것 같아요. 그런데 중학교 가고 나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더라고요. 육상을 하게 해달라고 많이 졸랐죠.” 

    인기 없고 미래도 안 보이는 종목을 하겠다고 나서는 아들을 계속 말리던 부모는, 김국영이 중2가 됐을 때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그는 육상부가 있는 중학교로 전학했고,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육상 선수 생활은 조금도 즐거운 게 아니었다고 한다. 하루 종일 운동장을 뛰고 또 뛰고, 체력 강화를 위해 높은 산도 거듭 올라야 했다. 그러고 출전한 첫 대회에서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받아들었을 때 김국영은 그만 낙담하고 말았다. 부모를 오랫동안 설득해 간신히 시작한 운동이 아니었다면 이때 육상계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 고비를 넘기자 곧이어 김국영의 시대가 열렸다. 

    중3에 올라가면서 그는 이미 동년배에 적수가 없는 수준이 됐다. 고등학생 때는 국가대표 유망주로 뽑히며 ‘한국 육상의 희망’으로 불렸다. 그리고 열아홉 살 때 31년 묵은 한국 기록을 갈아치웠다. 천재성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성취다. 김국영은 “육상은 단순하다. 맨몸으로 가장 빨리 달리고, 가장 높이 뛰어오르고, 가장 멀리 내달리려 노력한다. 그 목표를 이뤄냈을 때 찾아오는 기쁨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그 순간이 있어 계속 훈련에 매달리게 된다”고 했다. 심 감독도 김국영이 ‘노력하는 천재’라고 거들었다. 

    “너무 힘들면 X물까지 게워낸다는 얘기 압니까. 국영이가 그렇게 운동합니다. 훈련 끝나고 화장실에서 혼자 토하는 거 보면 마음이 짠한데, 한편으로는 기특하고 고맙고 그래요. 누가 시킨다고 그게 되겠습니까. 지가 좋아야 할 수 있는 거죠.”

    심 감독의 얘기다. 육상 100m는 10초 안팎의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하는 종목이다. 폭발적 스피드를 내려면 전신근육이 받쳐줘야 한다. 팔을 힘차게 흔들어야 다리 추진력이 강해진다. 공기 저항을 뚫고 나가려면 상체 근육이 필요하다. 단 10초의 분투에 온몸은 녹초가 된다. 그것을 버텨낼 힘을 기르려면 평소 고된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특히 김국영은 레이스 후반에 체력이 떨어지는 게 단점으로 지적됐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스타트에 지구력까지 갖춘다면 한국 육상 최초 ‘10초 벽 돌파’가 눈앞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김국영은 더욱 고되게 달리고 또 달린다. 

    “2015년 광주시청 팀에 오고부터 400m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400m를 전력으로 달린 뒤 딱 1분 쉬고 다시 400m를 뛰는 거죠.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도 또 뛰어요. ‘10초만 더 쉬고 싶다, 5초만이라도 더…’ 할 때 다시 스타트.(웃음) 육상경기장 트랙을 보면 출구가 네 개 있는데, 뛰다가 ‘아, 저 밖으로 그냥 도망쳐 나가버리고 싶다’ 생각한 적이 많아요.”

    김국영이 살짝 웃으며 한 얘기다. 이를 ‘젖산내성 훈련’이라 부른다고 한다. 육상 100m는 치열한 속도 경기다. 몸에 산소를 공급해 에너지를 얻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육상 단거리는 무산소운동으로 분류된다. 선수들은 근육 속 글리코겐을 포도당으로 바꿔 에너지를 얻는다. 이 과정에서 근육에 젖산이 쌓이고 피로감이 생긴다. 이것을 버텨내는 힘, 즉 젖산내성이 경기 후반 레이스를 좌우한다.

    내년 자카르타아시아경기대회를 향해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제가 현재 100m를 49걸음에 뛰어요. 걸음걸음이 치밀한 계산 아래 이뤄지죠. 출발선에 서면 마치 기계처럼, 과거에 훈련했던 그대로 몸이 움직입니다. 이걸 48걸음으로 줄이면 기록이 더 단축될 것 같아요. 현재 뛰는 속도를 유지하면서 한 걸음을 줄이는 게 굉장히 어렵지만 꾸준히 훈련 중입니다. 체중도 지금보다 1kg쯤 줄일 계획이에요. 그렇게 제게 가장 맞는 신체조건과 주법을 찾아가고 있죠.”

    김국영의 말이다. 훈련을 하지 않는 매순간은 ‘훈련 준비’의 연속이다. 그는 “만에 하나 부상을 입을까 봐 슬리퍼를 신지 않고, 아무리 더워도 양말까지 꼭 챙겨 신는다”고 했다. 

    한창 젊은 나이인데 친구들과 놀고 싶을 때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저 웃어넘겼다. “전에는 모든 과정을 혼자 다 챙겨야 하는 게 좀 힘들었는데 5월부터 개인 트레이너가 생겨 큰 도움을 받고 있다. 트레이너가 꾸준히 근육을 관리해주고 식단과 영양까지 챙겨줘 몸이 부쩍 좋아진 것 같다”며 자연스레 ‘훈련’으로 주제를 옮겨갔다. 이 트레이너가 지금 김국영의 가장 좋은 친구인 셈이다. 

    트레이너 비용은 심 감독이 자비로 대고 있다. 김국영은 “감독님에게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이 이야기를 꺼냈다. 심 감독은 “국영이가 해외 대회에 출전하고 와서 ‘외국 선수들은 개인 트레이너가 따라붙어 일일이 챙겨주데요’ 하더라. 그 말끝에 부러움이 느껴져 ‘그래, 내가 트레이너 고용해주마’ 했다. 선수가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감독으로서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나”라며 “그 뒤 좋은 분을 찾아 고용했더니 국영이가 피로가 훨씬 빨리 풀리고 컨디션도 좋아진다고 기뻐했다. 지금 돈이 대수인가”라고 밝혔다. 김국영은 이런 헌신적 지도자와 함께 전인미답의 길을 갈 준비를 하고 있다. 당장 12월 초부터 제주에서 내년 아시아경기대회 대비 특훈에 돌입한다. 

    그에게 “10초 벽을 깨고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나면 뭘 하고 싶은가”라고 물었다. 김국영은 “2020 도쿄올림픽 100m 결승에 진출하고 싶다”고 했다. “선수로서 목표를 다 이루고 난 뒤 꿈은 뭐냐”고 다시 물었다. 그는 “생각한 적 없다”고 했다. 

    “지금은 되도록 오래 선수로 뛰고 싶은 마음밖에 없습니다. 1982년생 개틀린이 현재 남자 100m 세계 최정상에 올라 있듯 100m 종목 선수들은 선수 생명이 길거든요. 뛸 수 있을 때까지 뛰어 계속 제 기록을 단축하고 싶어요.”

    100m 10초 기록을 깨면 받게 될 포상금 3억 원이나 자신이 누리게 될 영광 같은 건 김국영의 머릿속에 아예 없는 듯 보였다. 어쩌면 도무지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벽을 오직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기어이 뛰어넘었을 때 느끼는 희열이 그가 얻고자 하는 보상의 전부인 듯했다. 그렇게 스물여섯 청년이 지금 100m 10초 벽을 힘차게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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