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1

2017.11.01

지상전시

딱딱한 ‘레고’ 브릭이 예술로 재탄생

‘디 아트 오브 더 브릭’展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7-10-30 14: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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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라고만 생각했던 플라스틱 조각들이 거대한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내년 2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디 아트 오브 더 브릭’ 전시회에서는 레고(LEGO) 브릭(플라스틱 블록)을 사용해 만든 3차원 조형물들을 통해 새로운 예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멀리서는 놀이동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조형물인가 싶지만, 가까이 가보면 올록볼록 튀어나온 레고 브릭의 입체감에 입이 떡 벌어진다. 동시에 ‘도대체 이걸 누가 만들었지’ 하는 궁금증이 밀려온다.

    이 전시회의 주인공은 한때 억대 연봉을 자랑하던 변호사 출신 미국인 네이선 사와야(Nathan Sawaya·44)다. 사와야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그리고 이야기를 쓰며 상상력을 키워왔다. 뉴욕대에서 법학을 전공해 변호사가 됐지만 회의실에서 계약 협상을 하는 것보다 방에 혼자 앉아 레고 브릭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는 생각에 2004년 사표를 던졌다. 그로부터 3년 뒤 사와야는 레고 브릭을 이용한 첫 전시회를 열었고 관람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번 ‘디 아트 오브 더 브릭’은 작가의 대규모 작품 위주로 소개하는 첫 월드투어 전시회다. 그동안 사와야는 영국 런던, 뉴욕, 러시아, 대만 등 전 세계 100여 개 도시에서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해당 작품들에 사용된 레고 브릭 개수는 100만여 개. 지구본, 전화기 등 아기자기한 생활소품부터 인체의 다양한 동작을 유려한 곡선으로 표현한 대형작품까지 생동감을 안겨준다.



    신작 ‘Division’, 한국 전시에서 첫 공개

    아라아트센터에는 지하 1층부터 지하 4층까지 각 층마다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사와야의 작업실을 보여주는 ‘아티스트 스튜디오(Artist Studio)’를 시작으로 자신이 경험했던 수많은 감정의 변화를 투영한 작품들을 모아둔 ‘휴먼 컨디션(Human Condition)’, 비너스상과 다비드상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품을 레고 브릭으로 재창조한 ‘패스트 마스터스(Past Masters)’, ‘모나리자’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같은 명화를 브릭 아트로 재탄생시킨 ‘포트레이트 룸(Portrait Room)’ 등 전시 공간이 마련돼 있다.



    마지막 전시장인 지하 4층에서는 이번 한국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신작 ‘Division(분열)’을 만나볼 수 있다. 12만여 개 브릭이 사용됐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한반도 분단을 염두에 두고 서울에서 처음 작품을 공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관객에게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작가의 글에서 사와야는 ‘사랑이 증오보다 강하듯 희망 또한 절망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가장 깊은 절망에도 희망의 빛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전시장 내 모든 작품에는 작가의 의도가 친절하게 적혀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6m 높이에 달하는 연두색 공룡 뼈 모양의 작품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총 8만20개 브릭이 사용됐으며 딱딱한 직사각형 브릭으로 실물과 거의 비슷한 곡선을 만들어낸 점이 감탄을 자아낸다.  

    사와야의 또 다른 대표작은 ‘Yellow(노랑)’다. 전시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Yellow’는 제목 그대로 노란색 브릭만 사용했으며, 손으로 가슴을 열어젖히자 그 밑으로 노란색 내장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세상을 향해 자기 마음을 열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무척 가치 있다. 이 작품을 볼 때마다 방황하던 시절 경험했던 어떤 깨달음이 떠오른다’고 설명했다.

    ‘Grasp(구속)’는 꿈을 향해 나아가려고 할 때 이를 말리려 붙잡는 손들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가가 변호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포기하고 전문적인 레고 브릭 아티스트가 되고자 했을 때 이를 염려하던 사람들에게 전한 작가의 답변이다. 또한 ‘인생의 과제는 꿈을 향해 나아갈 때 구속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힘을 찾는 것’이라는 작가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Swimmer’는 작품명처럼 수영하는 사람을 표현하되 수면 아래는 보이지 않게 제작됐다. 수면 아래 모습은 관객의 상상에 맡기겠다는 뜻이다. 물을 표현하고자 파란 레고 브릭을 다양한 형태로 활용했으며 실제 물속에서 수영하는 느낌을 주려고 푸른 조명을 사용했다.

    사와야는 단순히 브릭을 조립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색과 움직임, 빛과 원근감을 활용해 웃음과 감탄, 경악과 공포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낸다. 무엇보다 팝 아트와 초현실주의를 ‘브릭’이라는 뜻밖의 소재를 활용해 새로운 차원의 예술로 승화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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