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6

2017.09.20

한창호의 시네+아트

가족의 불신 속에서 성장한 예술가의 초상

존 구옌 감독의 ‘데이빗 린치 : 아트 라이프’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7-09-19 14: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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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 같은 유명 국제영화제가 최근 지원하는 특별 프로그램이 있다. ‘영화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영화사의 자랑스러운 순간을 조명하는 동시에 젊은 영화인에게 영화를 만들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앨프리드 히치콕 등 수많은 명장의 삶이 재조명됐다. ‘데이빗 린치 : 아트 라이프’는 코엔 형제와 더불어 현대 미국 영화의 대표 ‘작가’(자기 스타일이 뚜렷한 감독)로 평가받는 데이비드 린치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린치 감독은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1977)때부터 초현실주의적인 표현법으로 단숨에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 ‘블루 벨벳’(1986),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등은 린치의 개성이 절정에 도달한 사례일 테다. 아마 지금도 세계 수많은 영화 지망생이 린치의 작품을 보며 그의 독특한 상상력에 매료되고, 또 창작 동기를 찾을 것이다.

    존 구옌 감독의 ‘데이빗 린치 : 아트 라이프’는 ‘감독의 영웅화’ 같은 전형성을 피했다. 그 대신 린치의 성장기부터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를 만들기 직전까지 ‘혼돈의 삶’을 반추하고 있다. 린치는 10대 때 하도 사고를 많이 쳐 모친으로부터 “너에게 실망했다”는 말을 숱하게 들으며 자랐다. 삶을 탕진하던 그가 어느 화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속된 말로 손톱이 빠지도록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부친은 아들의 늦은 귀가를 문제 삼았고, 이에 반항하던 아들에게 “너는 이제 더는 가족이 아니다”라는 극언까지 했다. 여전히 아들을 불량한 10대로 본 것이다. 린치는 그때 많이 울었다.

    린치의 본격적인 화가 수업은 펜실베이니아 미술아카데미에 진학하면서 시작된다.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이 강한 실험적인 작품 제작에 몰두하던 린치는 이때 영화를 만난다. 유명 대학에 진학하고, 화가 수업을 착실히 밟고 있는데도 그의 부친은 아들의 어둡고 기괴한 작품들을 본 뒤 “넌 절대 아이를 낳지 마라”는 말을 남긴다. 그는 여전히 자식의 예술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린치는 멈추지 않는다. 단편영화 성과 덕분에 미국영화연구소(AFI)의 지원을 받아 그의 첫 장편이 될 ‘이레이저 헤드’ 작업을 진행했다. 이번엔 부친이 남동생까지 대동해 “더는 시간 낭비하지 말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라”고 아들을 설득한다. 부친은 공무원이고 신사였다. 말하자면 린치는 여전히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1977년 린치는 드디어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를 발표했다. 다큐멘터리는 여기서 끝난다. 그가 31세 때고, 이후 성공은 우리 모두 아는 바다.



    ‘데이빗 린치 : 아트 라이프’는 예술가로 성장하고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인지 호소력 있게 그리고 있다. 마치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대한 영화적 해석 같다. 두 작품의 청년 모두는 이해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고독한 운명에 놓여 있어서다. ‘데이빗 린치 : 아트 라이프’는 예술가를 꿈꾸는 모든 청년에 대한 응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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