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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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on the stage

연극이 물었다. ‘당신은 어떤 아버지인가’라고…

연극 ‘미국아버지’

  • 공연예술학 박사  ·  동아연극상 심사위원회 간사 lunapiena7@naver.com

    입력2017-09-19 13:5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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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가 돌아가시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한(恨)으로 묻는다고 한다. 그만큼 먼저 보낸 자식은 부모 가슴에 남는다.  
    여기 아버지 마이클 버그가 있다. 그는 아들의 처참하고 끔찍한 죽음을 방송으로 목격한다. 26세인 아들 닉은 미군의 통신시설 관리를 위해 전쟁 중인 이라크에 입국했다. 그러나 2004년 5월 닉은 이슬람 무장테러단체 알카에다에 의해 잔인하게 공개 참수된 뒤 정찰하던 미군에게 발견된다.

    자연스레 세간의 이목은 평소 ‘반전(反戰)’을 외치던 사회운동가 마이클 버그에게 집중됐고, 영국 반전단체 ‘전쟁 저지 연합’은 그에게 연설을 요청했다. 마이클은 연설 대신 A4 용지 두 장 분량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 아들을 잃은 한을 초월해 반전 메지시를 담았다. 편지에서 그는 ‘결국 살인자들도 내 아들을 존경하게 됐다고 확신한다’며 당시 부시 행정부를 맹렬히 비판했다. 그리고 ‘9·11테러 때 미국은 타인을 적(敵)으로 규명하지 말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봤어야 했다’고 각성을 촉구했다.

    연극 ‘미국아버지’의 극본을 쓰고 연출을 한 장우재는 마이클이 쓴 편지의 울림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그러나 이 공연은 10년이 지난 후에야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관객 정서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극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연극 ‘미국아버지’의 아버지 빌(윤상화 분)은 마이클과는 딴판인 인물이다. 다만 아들이 이라크 테러세력에게 참수된 상황만 같을 뿐이다. 매사 불만이 많고 삐딱한 아버지 빌은 아들 윌(김동규 분)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그에게 분노 표출은 일상이다. 아들 윌은 번듯한 직장을 버리고 아프리카 수단을 거쳐 이라크로 자원봉사를 떠난다. 아들은 이슬람 여인과 사랑에 빠져 쟈니를 낳았다.

    마약에 중독된 아버지 빌의 시야에는 현실 속 인물과 함께 과거 인물의 환영들이 등장한다. 빌은 세상과 그들을 향해 분노, 저주로 얼룩진 독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장우재는 담백한 표현 기법으로 다층적 자아의 다의적 행동을 이슬비처럼 무대에 적셨다.



    빌은 과거 크게 다툰 친구가 9·11테러로 희생되자 이슬람 음악에 맞춰 춤추며 친구의 불행을 고소해한다. 곧이어 불어닥칠 운명의 소용돌이를 예상하지 못한 채. 이제 그는 어떤 처절한 절규를 세상에 내놓을 것인가. 공연 내내 미국 아버지 빌의 모습에 영화 ‘밀양’의 자식을 잃은 한국 어머니 신애(전도연 분)가 ‘오버랩’된다. 연극은 우리가 과연 어떤 미국 아버지인지 물음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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